작가의 고향을 찾아서 <16>
작가의 고향을 찾아서 <16>
  • 연지민 기자
  • 승인 2011.03.10 21: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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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승 (충북 충주)

역사 소용돌이에 묻힌 '모밀꽃 시인'

1930년 조선문학 발행… 충북작가 문단의 길 활짝
39년 첫 시집 '모밀꽃' 발표·50년 월북 문인 합류
80년 납·월북작가 작품 해금조치로 연구 진행돼

어느 女人의
슬픈 넋이 실린양
해쪽이 웃고 쓸쓸한
모밀꽃

모밀꽃은
하이얀꽃
그女人의 마음인양
깨끗이 피는꽃


모밀꽃은
가난한꽃
그女人의 마음인양
외로이 피는꽃

해마다 가을이와
하이얀이 피여나도
그마음 달랠길없어
햇쪽이 웃고 시드는꽃

세모진 주머니를 지어
까-만 주머니 가득
하이얀 비밀을 담어놓고
아모말없이 시드는꽃

- 모밀꽃·1 전문

정호승 시인하면 대부분은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의 시인을 생각한다. 서정적이면서도 가슴을 에는 시어로 팬을 확보한 시인의 명성 때문이다.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의 시인은 아니지만 같은 이름으로 시단에서 활동하던 우리 지역의 정호승 시인이 있다. 충주에서 태어나 월북한 모밀꽃 시인 정호승이다.

월북작가라는 딱지로 사람들의 기억에서 멀어진 정호승 시인은 남북분단의 비극으로 문학사에서도 철저하게 잊힌 작가로 남아 있었다. 민족의 아픔과 농민의 고난을 시로 담아낸 그의 문학정신도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묻혔던 것이다.

하지만 월북하기 전까지 시인의 발자취를 보면 결코 짧은 문단 생활이라 할 수 없다. 시인은 1950년 월북 전까지 1930년대 대표적인 문예지 '조선문학'의 발행인이자, 주간을 맡아 문학 활동을 벌일 정도로 유능한 문학인이었다.

1916년 충주에서 태어난 그는 송강 정철의 13대손으로 부유한 가정에서 성장했다. 1923년 충주공립보통학교(현 교현초)에 입학하였고, 서울 중앙고보에 입학해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하지만 중앙고보 시절 시인은 좌경서적을 읽다 학교로부터 정학과 무기정학을 네 차례나 받는 등 향후 험난한 앞날이 예고된다.

이후 1935년 서울로 올라온 정호승은 왕십리에서 운수사업체를 열었고, 건물 2층에 조선문학사를 옮겨 1930년대의 대표적인 문예지인 '조선문학'발간에 참여한다. 1933년 당시 유일한 문학지인 '조선문학'은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의 기관지 역할을 담당하면서도 순수문학 작품을 게재해 우리나라 문단사에 영향력을 미쳤다. 또 시인은 이무영과 이흡, 지봉문 등 충북 출신 작가들을 조선문학에 끌어들여 문학교류를 갖는 등 지역 작가들에게도 문단의 길을 열어주었다.

정호승 시인은 1939년 첫 시집이자 유일한 시집 '모밀꽃'을 발표한다. 가난한 농촌의 현실을 생생한 시어로 녹여낸 시어들은 일제강점기에 우리말로 펴낸 시집이란 점에서 의의가 크다. 시집 발간 이후 일본의 감찰과 원고가 불태워지는 등 고초를 겪었다.

시인의 삶은 그러나 1945년 광복을 맞으며 극명해진다. 시인에서 사회주의 사상가로 변모한 그는 '아우성'을 발간하며 사회주의 운동에 적극 가담한다. 이러한 사건들로 1946년 청주교도소에 6개월간 수감됐으며, 1948년에는 김구 선생의 입북을 따라 북행한 뒤 2차 옥고를 치렀다. 광복 공간에서 좌익 문인으로 활동했던 정호승은 1950년 6·25전쟁 중 충주지역 예술동맹위원장을 지내다 결국 월북 문인에 합류한다.

격동의 시대를 온몸으로 끌어안고 이상을 꿈꿨던 월북 시인들은 그러나 북쪽에서도 환영받지 못한 채 역사의 비운으로 남겨졌다. 정호승 역시 월북작가로 매몰됐다가 1980년 납·월북작가 작품 해금조치로 민족적 삶을 총체적으로 다룬 모밀꽃이 비로소 빛을 보게됐다.

정호승(본명 정영택 1916~?)

충주에서 출생했다. 1933년 조선문학 발행인과 주간으로 활동하며 '불안이 풀리든날'과 '소작인'을 조선문학에, 시 '노래를 잊은 이 몸'을 자오선에, 시 '호들기여'를 동아일보에 발표하는 등 30년대 중반에 집중적으로 시를 썼다.

1939년에는 비판적 사실주의 농민시로 민족적 삶의 총체적 의미를 탐구한 첫 시집 '모밀꽃'을 출간했다. 광복 후 사회운동에 적극 가담하다 1950년 월북한다. 1980년 납·월북작가작품 해금조치로 그의 작품집 출판은 물론 연구도 활발히 진행돼 왔다.

지난 2002년에는 계간지 '문학사랑' 주관으로 '호승시문학상'을 제정해 그의 시정신을 이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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