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은 부글부글 끓는데
민심은 부글부글 끓는데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1.03.07 23: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영동)

태풍 '루사'가 영동군을 강타했던 지난 2002년 수해복구 사업이 본격 착수되며 지역에는 건설공사 붐이 일었다. 3000억원에 육박하는 예산에 수백 건의 공사가 동시 발주되는 상황이다 보니 수의계약을 노리고 외지에서 주소지를 영동으로 옮기는 건설업체가 속출했다. 특수 상황을 감안해 수의계약 규모를 10억원까지로 확대했으니 당연한 현상이다. 영동군은 즉각 방침을 정해 발표했다. 수의계약은 지역업체에 우선권을 주되 지역에서 소화할 수 없는 잉여 물량이 발생할 경우 외지 업체에 할당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공사가 발주되면서 이 방침은 휴지쪽이 됐다. 첫 수의계약부터 외지업체가 따냈고, 이후에도 알짜배기 공사들을 외지업체들이 챙겨갔다. 우선권은커녕 외지업체의 하도급 업체로 전락한 지역 건설업체들은 반발했다. 이때 군 고위 관계자가 지역업체들의 불만을 보도한 기자에게 따졌다. "업자들을 직접 만나 보니 불만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던데 당신은 누굴 취재해 이런 기사를 썼느냐"는 항의였다. 기자는 졸지에 여론을 조작하고 선동한 혐의를 뒤집어썼다.

그는 지역 업자들을 만났을 것이고, 불만이 뭐냐고 묻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공사발주권과 감독권을 쥐고 있는 군청 고위간부에게 대놓고 '왜 외지업체만 챙기느냐'고 따질 업자가 얼마나 되겠는가. 갑(甲)을 불편하게 하면서까지 을(乙)이 따지고 항변하는 '갑을관계'는 흔치 않다. 이런 일방적 관계에서 오판이 생겨나 행정을 독선으로 몰아갔고, 결국 당시 수해복구공사 전반이 검찰 수사를 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최근 영동군에서 잇달아 터진 공금횡령 비리들이 태풍 '루사' 못지않은 괴력으로 지역을 흔들고 있다. 그러나 이 과정을 지켜보는 군민들의 분노가 사태를 수습하고 민심을 안정시킬 당사자들에게는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것 같다. 지역여론이 심각하다는 전언에 대해 영동군 한 간부직원은 "주민들은 한 도둑을 열 사람이 막지 못한다며 개인 범죄로 조직이 위축될 필요가 없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일부 주민들이 풀이 죽은 공무원에게 이런 위안을 했을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이런 위로를 여론의 실체로 본다면 경솔하고 안일한 판단이다. 주민들끼리 모인 장소에서 나오는 성토성 발언은 차마 글로 옮기기 어려울 정도다.

주민들은 도둑질한 공무원보다 잇따라 혈세를 도둑맞고도 썩어빠진 빗장조차 바꾸지 못하는 공직의 무기력에 더 분노하고 있다. 본청에서, 사업소에서, 심지어는 난계국악단에 이르기까지 횡령, 뇌물수수, 변호사법 위반 등 크고작은 내부 비리가 연이어 터지면서 군민들은 이제 패닉 상태에 빠져있다. 그런데도 군은 감사원 감사와 경찰 수사를 지켜보자는 수동적 입장만 견지할 뿐 주체적이고 가시적인 수습책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회계 시스템 탓만 할 뿐 책임규명 의지는 실종된 상태다. 그렇다고 그럴듯한 횡령예산 환수대책을 내놓은 것도 아니다. 범행 당사자의 재산권 확보만으로 17억원대 혈세를 되찾겠다는 것은 소도 웃을 일이다.

어제 성명을 낸 군의원들 역시 여론에 귀 기울여 왔는지 의문이다. 이번 사태에 대한 군의회의 공식대응은 어제 내놓은 알량한 성명서 한 장이 처음이다. 지난해 7억여원 유가보조금 횡령사건이 밝혀진 지 4개월 만이고, 올초 10억원대 횡령 건이 또 터지면서 지역이 전국적 망신을 당한 지 한 달 보름 만이고, 감사원이 한 달 일정의 집중감사에 나선 지 보름 만이다. 일부 시민단체들이 성명을 내기로 한 오늘보다는 하루 빨랐으니 타이밍만큼은 절묘하게 맞춘 셈이다.

어제 성명에서 군의원들은 '군정을 견제하고 감시해야 할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못해 뼈아픈 죄책감을 느낀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간의 침묵'에 대해서는 일언반구가 없다. 군정 견제와 감시뿐 아니라 유권자의 여론을 수렴하고 정치적 행위를 통해 대변하는 것도 군의회의 책무다. 특위 구성을 하겠다고 했으니 지켜볼 일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