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목련
백목련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05.24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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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편지한통
향기로운 5월. 눈을 드는 곳마다 꽃이고, 숨만 들이쉬면 꽃향기다.

눈부신 건 꽃뿐만이 아니다.

5월의 신록은 꽃만큼이나 싱그럽고 어여쁘다.

그러나 중순 전엔 그런 것들을 감상할 여유가 생기지 않는다.

5일, 어린이날을 시작으로 어버이날, 스승의 날, 그리고 줄줄이 이어지는 집안 일 때문이다.

지지난 주 주말, 시 할머님 생신이라 시댁에 갔다.

올해로 94세. 80세에 손자와 함께 속리산 문장대까지 오를 정도로 정정하셨지만, 지금은 연세가 연세인지라 많이 쇠약해지셨다.

정 많으신 할머니는 그래도 여전히 식사 중에 누구 하나라도 보이지 않으면 왜 안 보이냐, 걱정하시고 밥숟가락이 입에 들어가는 걸 볼 때까지 마음을 놓지 못하신다.

아침에 생신 상을 차려 드리고 나서 남자들은 아버님과 함께 모내기 준비하러 논으로 가고, 여자들은 집에 남아 뒷설거지를 했다.

뒷설거지를 끝내고 나서 보이지 않던 동서가 한 시간 쯤 지나 취나물을 소담스러우리만치 뜯어왔다.

동서는 상추를 씻고 있는 나에게, 취나물을 한움큼 내어주며 ‘형님, 산에 예쁜 꽃들이 많이 피어 있어요.’ 한다.

무슨 색 꽃이더냐, 물었더니 흰색이란다.

촌에서 자란 동서가 하얀 찔레꽃을 모를 리는 없을 테고, 순간 머릿속에 은방울꽃이 그려졌다.

꽃이 아래를 보고 피지 않았느냐 하니, 그렇다 한다.

꽃이 종 모양이더냐, 하니까 자세히는 모르겠단다.

점심을 먹고 나서 동서네는 차를 타고 집으로 갔다.

나는 사진으로만 본 은방울꽃을 꼭 한 번 보고 싶던 터라, 꽃을 보러 가자며 남편이랑 애들을 데리고 집을 나섰다.

산은 생각보다 오르기가 만만치 않았다.

애들은 뒤따라오며 왜 그리 머느냐, 은방울꽃이 정말 있느냐, 투덜거린다.

가시덤불을 헤치며 산을 올라 동서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던 지점에 이르니, 잎이 꽃삽 모양을 한 식물이 바닥에 쫙 깔렸다.

잎을 보는 순간 이 거구나, 싶었다.

포기마다 눈으로 더듬는데 사진에서 보던 바로 그 은방울꽃이 보인다.

긴 꽃대에 앙증맞은 방울 모양 꽃들이 조롱조롱 달려 있다.

어찌나 신기하고 사랑스러운지. 나는 심봤다를 외치듯 “은방울꽃이다” 탄성을 질렀다.

내 소리에 애들이랑 남편이 고개를 숙이며 꽃을 본다.

들꽃 이름을 수없이 가르쳐주어도 다시 물어보면 이름을 대지 못하던 아이들도 어렵게 산에 올라 본 꽃이니 잊어버리지 않겠지, 생각하며 산을 내려왔다.

산을 내려오는 내내 보물지도 한 장을 손에 쥔 듯이 뿌듯했다.

그리고 은방울꽃을 볼 재미에 내년 이맘때면 또 돌아올 할머니 생신이 벌써부터 기다려졌다.

사흘 전,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우연히 김해화 시인이 운영하는 카페에 들어갔다.

회원으로 가입하면 꽃 편지를 받을 수 있단 말에 얼른 회원가입을 했다.

바로 어제, 기다리던 편지가 와 반가운 마음에 읽으려는데, ‘짐을 내려놓습니다, 고맙습니다.

’ 꽃 편지 제목 치고는 좀 이상했다.

“우리 사회에 양극화 현상이 두드러지면서 꽃 편지를 받아보는 다수의 독자들과 꽃 편지를 쓰는 내 정서의 차이가 너무 컸습니다.

내 주위에서, 내 동료들과 이웃들에게서 이 사회가 추구하고 있는 보편적인 행복과 아름다움에 대해 들려줄 이야기들을 찾을 수 없을 만큼 절망이 극단을 향해서 치닫고 있기 때문입니다.

” “지금은 살 만큼 사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야생화에 대한 관심도 높아져서 야생화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이 거의 없습니다.

꽃을 통해 아름다움과 행복을 찾고 싶어 하는 사람들과 알맞게 행복하고 아름다우면서 시간도 넉넉한 사람들의 정서가 맞아떨어지는 그런 꽃 편지는 내 몫이 아니라는 생각에 이렇게 조용하게 짐을 내려놓기로 한 것입니다” 철근쟁이 시인이라는 별명의 시인, 이 땅의 노동자이면서 시인인 그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 가슴으로 느껴졌고, 나는 내 속물근성을 들킨 것 같아 부끄러웠다.

꽃 편지 한 장 받아보지 못하고, 짐을 내려놓겠다는 처음이자 마지막 편지를 받은 나는 시인에게 답장을 보냈다.

어떤 마음인지 느껴진다,힘내라, 그래도 사람들이 장식품으로 선택한 것이 그나마 들꽃인 것이 다행이 아니냐, 하는.다른 사람들이 ‘알맞게 행복하고 아름다운’시간을 보낼 때, 시대의 통증을 짊어지고 아파하는, 그 섬세하고 예민한 촉수를 지닌 시인들이 이 땅에 없다면 얼마나 더 삭막하고 시대에 대한 반성조차 없을까.나는 그런 생각을 종종 한다.

시인의 편지 한 통. 들꽃의 이름 몇 개 안다고 호들갑 떨고, 들꽃을 좋아라 하는 내 마음에 혹 감추어진 허영심이 없나 돌아보게 한 편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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