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의 역사와 무상급식
가난의 역사와 무상급식
  • 오창근 <칼럼니스트>
  • 승인 2011.03.02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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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오창근 <칼럼니스트>

새 학기가 시작되는 첫날, 침대에서 꼼지락거리는 아들 녀석들을 깨우다 조간신문에 난 '충북 초·중학교 오늘부터 무상 급식'이라는 표제를 보았다. 가끔 개그맨들이 충청도 사람을 희화해 '아버지 돌 굴러가유' 하면 밑에서 일하던 아버지는 벌써 돌에 맞아 죽었다는 말로 충청도 사투리가 웃음의 소재가 되곤 한다. 예산, 당진 지역의 사투리를 충청도 전체의 사투리로 오해해 충청도 사람은 말과 행동이 모두 굼뜬 줄 안다.

전국 시·도 가운데 충북이 전국 16개 시·도 가운데 최초로 모든 초·중학교에 무상급식을 시작하고, 충남은 초등학교만 우선 실시한다. '공자께서 군자는 욕눌어언이민어행 (欲訥於言而敏於行)이라고 해서 말에는 어눌하고 행동에는 민첩해야 한다.'라고 했다. 양반의 도시답게 말을 할 때는 신중하나 행동의 민첩성은 타 시·군 추월을 불허한다. 아직도 무상급식 문제를 놓고 포퓰리즘(populism)이라 하여 시와 의회 간에 첨예한 갈등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충청도의 이번 조치는 단연히 빛날 수밖에 없다.

벼 재배의 기원은 여러 학설이 있으나 한반도에 들어온 것은 신석기에서 출발하여 지금으로부터 3000~4000년 전에 중국의 중북부지방을 거쳐 들어온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전국에 걸쳐 발견된 탄화미(炭火米)를 그 근거로 들고 있다. 벼의 연원은 오래됐지만 굶주림에서 벗어난 것은 불과 1970년대 초쯤이다. 가난과 굶주림의 상징인 보릿고개라는 말로 당시의 고단한 삶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는 어르신들이 많다. 묵은 곡식이 떨어지고 아직 보리가 여물지 않은 그 시절을 넘기 힘든 고개로 기억하는 노인과 다이어트에 목을 매고 보릿고개를 마치 산을 넘는 고개로 기억하는 학생들과의 괴리가 공존하는 사회가 되었다.

보릿고개는 24절기 중 여덟 번째인 소만에 해당한다. 입하와 망종 사이의 소만을 5일씩 3후(候)로 등분하여, 씀바귀가 나오고, 냉이가 누렇게 죽어가며, 보리가 익는다고 하고 이 시기에 심한 가뭄이 든다고 하였다. 이 시기가 되면 연둣빛 찔레순을 따 먹고 도라지, 더덕, 잔대뿌리를 캐어 먹으며 연명했다.

중동국가에서 불고 있는 혁명의 시작은 곡물가격 폭등으로 인한 배고픔에서 출발한다. 굶주림은 혁명의 부싯돌이 되어 중동 전역으로 번지고 있다. 권력자들은 석유를 팔아 수백억 달러씩 착복을 하지만 배고픈 서민은 하루 양식을 걱정해야 하는 것이 중동국가의 처지다. 벼와 밀의 기원보다 오래된 것이 우리 몸속에 남아 있는 배고픈 유전자인지 모른다. 굶주림을 해결하지 못한 지도자는 언젠가는 국민의 저항 앞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다. 공산주의를 지향하면서도 역사에도 찾아볼 수 없는 3대 세습을 강행하는 북한에서도 장마당이라는 공간을 함부로 하지 못하는 것은 그만큼 굶주린 인민의 폭발력을 짐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막대한 예산이 드는 무상급식 문제로 진통을 겪고 있는 타 시·군이 많다. 그러나 다른 각도에서 보면 우리 민족이 한반도에 처음 정착한 이래 먹는 문제에 대해 국가가 나서 무상으로 급식한다는 자체는 큰 의미를 담고 있다. 우리 역사 가운데 수없이 일어난 민란의 가장 큰 이유는 배고픔과 관리의 부정부패였다. 열심히 땅을 일궈도 허기진 배를 끌어안고 살 수밖에 없었던 긴긴 가난의 역사가 있었다.

물론 지금은 일부 가정을 제외하곤 급식비를 내는 데 어렵지 않은 가정이 대다수다. 그렇다고 아직도 국격을 논하고 도시를 디자인한다는 서울시장이 앞장서서 아이들 밥 먹이는 일에 쌍심지를 돋우며 반대하는 것은 옳지 않다. 애들 밥부터 먹이고 다음 문제를 의논해도 늦지 않는다. 도민과 약속한 공약을 과감히 추진한 충남·북의 시·도 지사와 교육감에 큰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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