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매와 낙찰자 소동
경매와 낙찰자 소동
  • 연지민기자
  • 승인 2011.02.24 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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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운보 김기창 화백이 거주했던 청원 '운보의 집'이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경매에 나온 일부 부지가 4번의 유찰 끝에 낙찰됐기 때문이다.

지난 21일 경매 부지가 12억여원에 낙찰되자, 낙찰자에 대한 관심이 증폭됐다. 운보의 집 정상화를 위해 당초 운보문화재단이 응찰해 낙찰받지 않겠냐는 추측이 빗나가면서, 부지 경매는 의외의 인물인 개인 응찰자에게 돌아갔다.

개인이 낙찰받았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지역 문화예술계에선 '누구냐'부터 시작해 '왜 낙찰받았는지'에 대해 추측이 난무했다. 당초 신분 노출을 꺼린 개인응찰자였지만 낙찰자에 대한 신상 추적으로 하루만에 베일이 벗겨졌다. 퇴임을 앞두고 있는 모 기관 사람이 지인 몇몇과 함께 부지를 매입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왜 샀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건너온 이야기는 퇴임 후를 위해서란 말과, 아직은 아무런 사업구상이 없다는 말이었다. 부지 매입에 대한 진위는 알 수 없지만, 지역의 좁은 바닥에 파다하게 퍼져나간 경매부지 낙찰에 관련된 말들은 낙찰자와 상관없이 회자되기도 했다.

전해들은 말에 의하면 낙찰자는 낙찰을 받은 후 하루동안 100통이 넘는 전화를 받았다고도 한다. 세인의 관심에 낙찰자도 당황스럽지 않았을까 싶다.

경매를 둘러싸고 며칠 동안 벌어진 이번 일은 단순한 해프닝으로 넘길 수도 있지만, 운보의 집과 관련한 시민들의 관심은 그만큼 크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그동안 묵묵히 지켜보고만 있던 다수의 시민들이 운보의 집이 정상화되길 바라는 애정의 마음도 담겨 있음이다.

2006년에 파행 운영으로 발단된 운보의 집은 문화예술계의 정상화 바람 속에도 쉽게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많았다. 운보문화재단과 운보와 사람들이 각기 운영권을 가지고 있는 운보의 집은 파행 운영의 원인을 제공했다.

부지에 관한 소유권이 다르고, 운보 선생의 지적 재산권에 대한 권리가 다르다 보니 운영의 주체에 따라 변수가 산재해 있었던 것이다.

이런 와중에 운보와 사람들이 투자에 실패하며 일부 부지가 2006년 타인에게 넘어갔고, 이 부지는 2010년 말, 또다시 법원 경매로 넘어가며 낙찰 여부에 관심이 모아졌다. 그리고 4번의 유찰 끝에 새로운 임자가 나타났다. 운보문화재단이 아니라, 개인에게 넘어가며 운보의 집 향배는 지역문화계에 이슈가 되었던 것이다. 운보의 집이 지난 5년간 지역에선 길고 지루한 문제였으니, 기대감으로 시민들은 부지의 활용안이 궁금할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하다.

파행 후 운보의 집은 운보문화재단이 이사진을 운영하며 정상화 모색에 나섰으나 뚜렷한 방안을 찾지 못했다. 다시 정비해 문을 열었어도 시민들의 발길은 좀처럼 이어지질 않고 있다. 운보의 예술혼이 깃든 곳이라지만, 한번 추락한 이미지 훼손으로 지금도 찾는 사람 없이 쓸쓸하게 개점휴업 상태다. 그래서 운보의 집은 문화적 가치를 떠나 시민들에겐 잊혀질만 하면 툭 불거지는 골칫거리쯤으로 여겨진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경매 부지 문제는 또 다른 문제로 파생될 소지가 남아 있다. 소유자가 어떻게 부지를 활용할지는 모르지만, 이번을 기회로 운보의 집에 대해 곰곰이 곱씹어 봐야 한다. 운보의 집을 개인의 문제로만 돌릴 것이 아니라 지역의 정서를 담아내고, 지역의 문화가치를 보여주는 공간으로 의미를 확대, 재생산해야 한다. 그것이 충북의 자존심을 세우는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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