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원' 된 국정원
'걱정원' 된 국정원
  • 이재경 기자
  • 승인 2011.02.22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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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이재경 부국장 (천안)

삼성그룹 계열인 국내 대표적인 방위산업체 삼성테크윈. 시가 총액 4조원, 2010년도 연매출 3조2000억원에 2000억원의 영업이익을 낸 이 회사의 주가가 요즘 연일 하락세다. 지난해 가을 12만원까지 찍으며 고공 행진을 했으나 올해 들어 7만원대로 폭락하며 연중 신저가를 갈아치웠다.

증권사 애널들의 추천을 받고 8만원대에서 반등을 노리며 지난주 새로 주식을 매입했던 사람들이 어제는 '악'하고 곡소리를 내고 말았다. 이 주식의 최근 하락세가 더 가팔라졌던 이유는 다름 아닌 국가정보원의 인도네시아 특사단 첩보활동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인도네시아 특사단을 초청한 주된 이유는 초음속 고등훈련기 T-50을 팔기 위해서였다. 이 비행기에는 삼성테크윈이 만든 엔진이 들어간다. 1대당 비행기 가격이 240억원인데 엔진 값만 50억원에 이른다. 우리가 이번에 팔기로 한 비행기 대수가 50대였다니 만약 이번 사건으로 수출이 불발되면 회사 입장에선 2500억원어치의 매출이 날아가 버리는 셈이다.

그러자 주식카페에서 삼성테크윈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들이 국정원에 볼멘소리를 내고 있다. 가뜩이나 떨어진 주가가 비행기 수출 호재로 인해 좀 오르나 했더니 국정원의 어설픈 '짓거리'로 되레 곤두박질 치고 있다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회사 주가 내려간 거야 지엽적인 문제로 볼 수 있으나 정말 이 비행기의 수출이 불발되면 한걱정이다. 50대라면 1조2000억원어치의 수출을 하는 셈인데 여기에다 수출에 따른 추가 정비사업, 부품 판매, 조종사 교육 훈련비 등을 더하면 수출 효과는 훨씬 더 크기 때문이다.

현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원전과 T-50의 수출을 국가 2대 수출 프로젝트로 삼고 추진해왔다. 원전 수출-비록 퍼주기 논란이 일긴 했더라도-은 성사됐으나 UAE와 싱가포르를 대상으로 한 T-50의 수출은 번번히 고배를 마셔야 했다.

다행히 지난 연말 이 대통령이 인도네시아를 방문해 오래전부터 친분이 두터웠던 유도요노 대통령과 방위산업 분야 협력을 약속하며 물꼬를 트는가 싶었는데 이번에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발생했다.

다행인 건 아직 T-50의 수출이 물거품이 될 분위기는 아니라는 점이다. 애써 양국이 뻔히 정황이 드러난 사건을 감추는 것만 봐도 모종의 협상이 이뤄진 것 같다. 수출을 원하는 우리나라와 한국의 투자를 바라는 인도네시아의 경제적 상황이 맞아떨어진 결과다.

이제 불똥은 국정원으로 튀고 있다. 한국과 인도네시아 양국이 아무 일 없었다고 공식 논평을 낸 마당에 국민의 관심은 국정원의 어설픈 첩보력과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가에 쏠리고 있다.

지문을 남기고, CCTV에 얼굴을 찍히고, 들키고. 이거 말이 막힐 정도다. TV나 영화에서처럼은 못하더라도 이렇게 어설플 수 있을까. '국정원 직원들이 사용한 최첨단 첩보 기법은 절도였다'는 우스갯소리도 온라인에서 회자되고 있다.

정치권은 이번 사건이 벌어진 이유보다 알려진 배경이 더 궁금한 모양이다. 여야 의원들이 언론에 보도된 것을 두고 입을 모아 "국정원 내 파워게임과 레임덕의 산물"이라고 소리치고 있다. 국정원 내부에서 누군가가 이를 외부에 알려 원세훈 원장과 조직 내 기득권 세력을 내치려 했다는 주장이다.

착잡하다. 국가 안보와 국익 증진을 제1과제로 삼고 있는 우리 국정원의 현주소가 이 지경이니 청와대가 누굴 믿고 정보를 얻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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