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
  • 이재경 기자
  • 승인 2011.02.14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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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이재경 부국장 (천안)

위에서는 심각성을 못 느끼고 있는 것 같지만, 총체적 난국이다. 구제역, 물가, 전세 대란에 이어 지방 경제는 침체 일로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등 4중고다.

구제역으로 신음하는 농가들, 물가고에 시달리는 주부들, 전세난에 살던 집을 월세로 돌려야 하는 도시민들, '장사 안 된다'고 아우성치는 중소 상인들. 사방이 울상이다.

화가 나는 건 정부의 예측 및 방어 시스템이 제대로 가동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 출연 기관인 KDI(한국개발연구원)는 지난해 2011년의 우리나라의 물가상승률을 3.2%로 잡았다.

그러나 최근 대내외 상황에 전망치를 상향시킬 예정이다. 물가 상승률이 자칫 4%에 육박할 수도 있다는 견해도 내놓고 있다.

실제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4.1%나 상승해 1월 물가로는 13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KDI가 잘못했다는 게 아니다. 물가는 금리나 환율, 부동산 경기 등 주변 여건에 따라 변동할 수 있다. 문제는 조짐이 보일 때 대책을 세워야 하는 정부 부처가 상황이 곪아 터지고 나서야 꿈적인다는 점이다. 후행성인 지표(물가상승률)를 보고서야 움직이는 정부라면 보통 문제가 아니다.

전세 대란만 봐도 그렇다. 지난해 9월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은 기자들이 수도권의 전세난을 거론하자 "현재 전세난은 매년 이사철에 나타나는 수준으로 예년에 비해 심각한 것은 아니다."라고 잘랐다.

그러다 전셋값이 폭등하자 뒤늦게 올해 들어서야 1.13 대책을 내놓았다. 그것도 졸속에 그쳤다.

정부 보유 분량의 임대 주택의 공급으로 충분하다고 내다봤지만 보유 주택의 절반 이상이 허수였다. 지난 13년간 장부상으로는 계획돼 있던 임대주택 물량은 112만 가구였지만 실제 준공해 공급한 것은 32만 가구에 불과했다.

이후 대통령의 신년 좌담회 이후 부랴부랴 2.11 대책을 내놓았지만 '전·월세 시장 안정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원칙적인 것 말고는 새로울 것이 없었다.

배려심이 없는 집주인을 잘못 만난 세입자들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수도권에서 전세 1억원짜리 아파트에 살다가, 전세금을 그대로 놔두고 주인이 요구한 인상분을 월세로 50만원씩 추가로 부담해야 하는 사람들. 아예 월세로 전환하겠다며 집을 비워달라는 주인 앞에서 사정을 해도 속수무책인 주부들. 정부가 확보했다는 물량만 제대로 풀어놓았다면 그나마 조금은 숨통이 트였을 터인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현 정부를 믿고 그 탄생을 성원했던 국민의 실망이 더 커지고 있다. 막을 수 없는 천재지변이라면 감내하고 힘을 모아 정부에 힘을 실어줬던 국민이었지만 지금의 물가고와 주택난에 대해서는 모두가 고개를 젓고 있다.

'전세대란 MB, 경제 대통령 이미지 추락'. 14일 자 인터넷판에 올려진 기사의 제목이 신랄하다.

따지고 보면 경제뿐만 아니다. 정치적으로도 정부의 예측 시스템은 제대로 가동되지 않고 있다.

세종시 수정안을 꺼내 온 나라를 아수라장으로 만들었고, 또다시 국제과학비즈니스 벨트 공약을 번복해 지자체 간의 싸움판을 만들었다.

정책을 수정할 때, 약속을 지키지 않았을 때 그 파급 효과를 분석하고, 결과까지 책임져야 할 정부일진데 일단 던져놓고 보자는 식이다. '가혹한 정치가 호랑이보다 무섭다'는 옛 교훈이 새삼 떠올려지는 추운 겨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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