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인의 자존심 건드리지 마라
충청인의 자존심 건드리지 마라
  • 김영일 기자
  • 승인 2011.02.06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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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김영일 <본보 대기자>

중원(中原)땅을 차지하는 자가 천하를 얻는다는 말은 역사적으로 어느 나라에서고 통하는 얘기다.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곳을 차지해야 국가통일은 물론 태평성대한 나라를 건설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구려와 백제, 신라가 각축을 벌이던 삼국시대에는 한강유역을 손에 넣기 위해 경쟁을 했다. 조금 자세하게 얘기하면 내포문화권(대전 충남)과 중원문화권(충북)을 잇는 지역을 얻기 위해 각축을 벌였다고 보면 된다.

역대 대통령 선거에서 내포와 중원지방의 민심을 얻은 후보가 대부분 대통령에 당선됐다. 17번의 대통령 선거 중 간접선거로 치러진 초대와 8~12대, 3·15 부정선거로 얼룩졌던 4대를 제외한 열 번의 선거에서 5대와 13대를 빼놓고는 이들 지역에서 최다득표를 한 후보가 8회나 당선됐다.

두 지역에서 다득표를 한 후보가 낙선한 경우는 충북은 5대 윤보선 후보 한 번뿐이고 충남(대전 포함)은 5대와 6대 윤보선 후보, 13대 김종필 후보로 세 번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들 후보는 충남출신이다. 지역색이 약하던 시기일 때도 지역출신에게 표를 많이 줬다. 물론 15대와 16대 선거 때엔 충남출신인 이회창·이인제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지는 않았다.

16대 선거에서 행정수도건설을 제시한 노무현 후보와 17대 선거에서 과학비즈니스벨트를 공약한 이명박 후보가 각각 야당임에도 이들 지역에서 최다득표해 정권을 잡았다. 충청지역에 내건 공약은 노무현 후보가 '행정수도 이전 공약으로 재미 좀 봤다'고 한 것이나, 이명박 후보가 '선거 유세에서는 충청도에서 표를 얻으려고 제가 관심이 많았겠죠'라고 말한 것에서 효과를 거뒀던 것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이들 두 후보의 공약으로 인해 충청인은 마음이 편치 않다.

행정수도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사태로 행정중심복합도시(세종시)로 변했다가 이명박 대통령이 경제과학도시로 만들려는 수정안으로 지역을 벌집 건드린 것처럼 들쑤셔 놓았고 원안의 행정중심복합도시로 낙착되는 과정에서 충청인의 자존심은 상처를 입었다.

과학비즈니스벨트에 대해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1일 방송좌담회에서 "지난번 대국민 발표문에서 혼선을 일으킬 수 있는 공약이 선거 과정에서 있었다."라고 밝혔다. "거기에 얽매이는 것은 아니고 공약집에 있었던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과학비즈니스벨트는 17대 대선 한나라당 공약집 대전 충북 충남편에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구축'이란 제목으로 나와 있다.

대전 충남 충북의 광역자치단체와 의회는 물론 정당, 시민사회단체들이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일전불사'의 자세를 보이고 있다. '제2의 세종시 사태'로 간주하거나 '충청권에 대한 제2의 선전포고'로 보는 시각이 많다.

설날을 지나면서 대통령의 발언에 대한 분노는 잠시 숨을 고르고 있지만 연휴가 끝나는 오늘부터는 양상이 달라질 것으로 예상한다.

우선 대전시는 일요일인 6일 고위 공직자 전원이 참석한 대책대회를 가진 데 이어 오늘은 시청에서 지역시민사회단체와 '과학벨트 충청권추진협의회'를 열어 대처방안을 논의한다.

과학비즈니스벨트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후보시절 이 문제를 처음 거론했고, 이명박후보가 이를 이어 구체적으로 적시하면서 대선공약으로 활용했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충청인 누구도 이 문제를 정치권에 먼저 요구한 적이 없다. 물론 세종시 문제도 그렇다. 정치인들이 충청권에 해 주겠다고 약속해 이를 받아들인 것뿐이다. 공약을 믿고 표를 줬는데 이럴 수가 있는가. 충청도를 핫바지로 생각는 모양이다.

충청인은 결코 만만한 존재가 아니다. 우리 역사상 충신과 열녀는 물론 의병장과 의사, 열사가 많은 지역이라는 점에서 알 수 있다. 충청인은 이미 세종시 문제로 자존심에 많은 상처를 입었다. 과학비즈니스벨트 문제로 자존감을 잃고 싶지 않다. 정치권이 충청인을 제대로 봐 주길 바란다. 자존심을 더 이상 건드리지 말기를 바란다. 충청권에 대한 공약(空約)은 없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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