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과 귀갓길
명절과 귀갓길
  • 충청타임즈
  • 승인 2011.01.31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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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이근형 <포도원교회 담임목사>

작은아들이 돌아왔다.

금의환향이 아니다. 오히려 거지꼴이다. 그런데

아버지는 그 아들을 얼싸안고 동네잔치를 벌였다. 그 아들에게 걸맞은 용어가 있다면 '패륜아'일 것이다. 아버지의 재산을 빼돌려 외국에 나가서 여자들과 놀아나고 결국 그 모양이 되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아버지의 환대는 어찌된 영문일까 여기에는 배경이 있다.

우선 그 패륜아들, 그는 흥청망청 재산을 탕진한 후에 먹을 것도 없는 빈털털이가 되자 비로소 아버지의 집을 생각했다. "아버지의 집에는 비록 노예들도 먹을 것은 염려 없지 않은가, 감히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명분은 고사하고 품꾼의 한 사람으로 족하면서 밥이나 얻어먹으며 살자"는, 밑바닥까지 내려놓는 반성과 겸비였다. 그리고 아버지. 아버지의 심정은 작은아들을 그렇게 환대하는 것을 보며 불평하는 큰아들에게 하는 말속에 잘 나타나 있다.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으니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모두가 다 아는 성경의 이야기다. 작은아들의 귀가가 평일을 명절로 만들었다.

명절이기 때문에 아들이 온 게 아니라 아들이 돌아왔기 때문에 명절이 되었다. 그러나 인간의 모든 만남이 우리네 삶을 기쁨의 명절로 만들지는 않는다. 아버지의 크고 넓은 가슴과 비록 거지꼴이 되었어도 아버지의 품꾼으로라도 족하리라는 내려놓음이 만날 때, 만남은 명절이 된다.

며칠 후면 설날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설레지 않는다. 올해의 설은 부담 속의 귀갓길이 예상된다. 구제역의 여파 때문이다.

최근 본 신문에는 맹형규 행정안전부장관의 염려스러운 담화가 1면을 장식했다. "고향에 가더라도 축산농가 방문을 자제해 달라"면서 "차량과 방문자의 소독을 철저히 해 달라"고 당부했다는 것이다.

필자가 속한 대한예수교 장로회 총회에서도 간곡한 지침이 내려왔다. 내용인즉, 전 국민의 재앙인 구제역 종식을 위해 각 교회에서는 금식기간을 설정하여 기도해 줄 것과 축산 농가를 위로하며 관계 공무원들에게 격려할 성금을 모아 달라는 것이다. 이런 지침에 따라 필자가 섬기는 교회도 지난 주일에는 공동기도문으로 함께 기도를 드렸고 일주일간의 금식기도 주간을 선포하며 헌금을 당부했다.

명절이 좋은 이유는 그 첫째가 만남이다. 순백의 아들과 순백의 아버지가 만날 때 그 행색이 거지꼴이든 화려하든 그날은 기쁨의 명절이 된다. 그러나 성경 속 이야기의 큰아들처럼 시기와 질투, 그리고 분노로 오염된 만남은 아무리 화려한 명절에 만나도 구제역 바이러스를 경계해야 하는 것 이상으로 위험한 경계의 대상이 된다.

구제역 바이러스는 방역 당국의 예상대로라면 앞으로 2주 후면 수그러들 터이고 이 사회는 거기로부터 평정을 찾게 될 것이다. 중요한 건 마음 상태의 오염이다. 내 마음속에 남을 오염시키는 괴질 바이러스가 숨어있지 않은지, 과연 이 오염된 내면을 가지고 가족을 만나서 누군가를 오염시키는 오류를 범하지나 않을지….

언젠가 우리는 우리네 삶의 여정을 끝내고 설날이 되어 집을 찾아가는 행렬처럼 본향으로 간다. 그날이 오기 전에 거짓, 탐욕의 바이러스를 방역하고 그날을 진정한 명절이 되게 하기 위해 나는 또 성경 속의 '작은아들'이 되어야 한다. 그 사랑의 아버지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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