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큰 치킨'과 소상인의 절규
통큰 치킨'과 소상인의 절규
  • 남경훈 기자
  • 승인 2010.12.12 21: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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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남경훈 편집부국장

롯데마트가 전국 82개 점포에서 지난주부터 판매하기 시작한 5000원짜리 통닭이 주말과 휴일 장을 보러나온 소비자들로부터 인기를 독차지했다.

휴일 마트 개장과 동시에 치킨 판매를 시작한 결과, 전 점포에서는 오전에 200~400마리의 하루 물량이 모두 소진됐다. 청주도 마찬가지로 용암점의 경우 오전 10시에 300마리가 모두 팔려나갔다.

통큰 치킨'으로 이름을 지은 이 치킨은 포장용기를 큰 원형 바스켓 형태로 제작했다. 치킨전문점과 비교해 가격은 3분의 1이지만 크기는 20% 정도 크다.

롯데마트는 사전에 6개월간 필요한 원료를 주 단위로 미리 계산해 대량으로 주문

원가를 낮췄다고 밝히고 있다. 일부 소비자들은 치킨이 커피값보다 싸다며 반겼다. 경쟁관계인 이마트는 지난 8월부터 동네 피자보다 크기가 3배 큰데도 값은 절반인 피자를 팔아 재미를 보고 있다. 이마트 역시 점포마다 하루 피자 판매량을 390판으로 묶어 놓고 있다. 이마트는 피자 매장을 현재 50여 곳에서 내년엔 80여 곳으로 늘릴 계획이다. 롯데마트가 튀김 통닭 판매까지 나선 것은 이마트의 영향이 적지 않았던 것 같다.

물론 유통공룡들의 이런 미끼상품을 활용하는 판매전략은 종종 있어 왔다. 이윤이 거의 남지 않는 가격에 판매물량까지 제한하고 있다. 치킨이나 피자에 끌려 매장에 나오지만 다른 상품도 살 수밖에 없는 심리를 이용하는 게 궁극적인 목적이다. 문제는 이들 대기업 유통업체가 판매하는 피자와 치킨은 대표적 서민 창업 아이템이라는 데 있다.

대부분 프랜차이즈로 사업하는 자영업자들은 매우 영세하고 대다수 명퇴했거나 직장을 그만 뒀거나 취업이 잘 안 되거나 다른 사업을 하다 잘못돼서 적은 자본을 들여서 생계수단으로 삼고 있다. 이들이 투입하는 각종 비용을 고려하면 롯데마트나 이마트와 가격경쟁 자체를 벌일 수가 없다.

대기업의 이 같은 영역침범은 피자나 치킨만이 아니다. 최근 막걸리 붐이 일자 대기업들이 앞다퉈 막걸리 시장에 뛰어들었고 식혜시장, 천일염시장 등에서도 갈등을 빚은 적이 있다. 심지어 와인, 안마의자, 휴대전화 결제, 에?사업까지 대기업들의 손길이 뻗치고 있다.

대기업들의 무차별적인 사업영역 파괴는 궁극적으로 시장의 안정성을 해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생태계는 먹이사슬이 파괴되면 제 기능을 잃게 된다. 요즘 멧돼지가 도심까지 나타나는 것은 먹이사슬의 최상위 포식자가 사라지면서 개체수 조절능력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시장에 대기업만 남게 된다면 그 시장 또한 원활한 작동을 기대하기 힘들 것이다.

대기업은 틈만 나면 중소기업과 동반성장하겠다고 하지만 어느 중소기업도 이를 믿지 않는다.

기업형 슈퍼마켓 확장 시도나 이마트의 피자나 롯데마트의 치킨에서 보듯 골목길 상권까지 노린 대기업의 독점 생리는 전혀 변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으로 한동안 국민들은 전쟁의 공포에 떨었다.

거대 자본의 생계 위협에 이보다 더한 공포를 느끼며 뾰족한 대책 없이 덜덜 떨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 이웃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피자집이나 치킨집 사장들이다. 롯데나 신세계가 째째하게 힘없는 자영업자들의 밥그릇을 빼앗을 게 아니라 최고의 유통기업답게 '통큰 영업'을 기대해 본다. 자영업자들은 최근 정부에서 제시한 화두인 상생(相生)에 정반대되는 대기업의 횡포로, 상생이 아닌 생계형 소상공인을 죽이는 살생(殺生)이라고 절규하고 있다.

그리고 소비자들도 대기업의 이런 판매행태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보고 현명한 소비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해 보는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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