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된 삶을 위하여
준비된 삶을 위하여
  • 충청타임즈
  • 승인 2010.12.09 21:3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충청논단
정규호 <문화콘텐츠 플래너>

며칠 전 페이스북에 짤막한 글을 올린 적이 있습니다.

리영희 선생의 타계 소식을 접하고 난 뒤 "이 땅의 알맹이들이 세상을, 그리고 우리의 가슴속에서 자꾸만 빠져나가는 겨울입니다. 겨우 매달려 있는 감나무의 까치밥마저도 위태로워 보입니다.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은 새삼 옷깃을 여미며, 그래도 다가올 새날을 준비해야 하겠지요."라는 감회였습니다.

다음날 지인으로부터 "새 날을 꼭 준비해야 하는 건가요?"라는 물음표가 선명하게 찍힌 댓글이 전달된 것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나는 중학교에 다니던 10대 시절에 보이스카우트 단원으로 활동한 적이 있습니다

멋진 단복을 입고 머리에는 베레모와 목에는 항건이라고 이름 지어진 스카프를 맨 채 참으로 자랑스러워했던 기억이 선명합니다.

보이스카우트 단원의 구호는 바로 '준비'였습니다.

오른쪽 손가락 세 개를 세워 보이며 경례를 하면서 외치는 '준비'라는 구호의 숨은 뜻을 그때, 그 어린 나이에 제대로 알 리가 있었겠습니까마는 대충 어떤 일이 닥치더라도 사전에 준비된 자세가 있는 사람만이 충분히 대처할 수 있다는 정도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나는 지금도 '준비'를 위한 '준비'만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요.

아이팟과 아이폰에 이어 아이패드의 신화를 만들어 가고 있는 스티브 잡스는 한때 애플에서 쫓겨나는 위기를 겪기도 했습니다.

2005년 스탠퍼드 대학 졸업식 축사에서 스티브 잡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정말 몇 달간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실리콘밸리의 선배 벤처기업인들을 실망시켰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들이 넘겨준 바통을 땅에 떨어뜨린 셈이었으니까요. 저는 데이비드 패커드(휴렛패커드의 공동설립자)와 밥 노이스(인텔의 공동설립자)를 만나 이렇게 실패한 것에 대해 사과하려고 했습니다.

실리콘밸리에서 영영 떠나버릴까 하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분명해지는 것이 있었습니다.

아직도 제가 제 일을 사랑한다는 사실이었지요. 애플에서의 사건이 그 사실을 변화시키지는 않았습니다. 비록 쫓겨나긴 했지만 일에 대한 사랑은 변함이 없었지요. 그래서 다시 시작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애플에서 잘린 것은 결국 제게 커다란 행운이었습니다.

성공한 사람이 느끼는 중압감 대신 새로 시작하는 초심자의 의욕이 찾아왔으니까요. 저는 자유롭고 해방된 기분으로 마음껏 창의성을 발휘하는 인생의 시기로 들어갔습니다.(이하 생략, -연준혁, 한상복 공저 <보이지 않는 차이> 위즈덤하우스에서 재인용)"

스티브 잡스의 이 말은 어쩌면 인생에서의 패배를 깨끗이 인정, 승복하고 보다 자유로운 사고의 틀에서 새로운 창의성을 발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 핵심일 것입니다.

곧 '준비'가, 그것도 철저한 '준비'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는 뜻이겠지요.

2010년이 이제 겨우 20일 남짓 남아 있습니다.

누구에게는 꿈결 같은 한 해였고, 또 누구에게는 얼음장 같은 한 해였을 수도 있겠지요. 그리고 우리는 또 분주하게 한 해를 마무리하기 위해 사람을 만나고, 일을 만나고, 지나간 일들을 반추하는 시간들과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그러한 분주함 속에서도 분명 '준비'된 어떤 이는 다가올 2011년 새해를 알차게 맞이하기 위해 국어사전의 뜻풀이 그대로 '미리 마련하여 갖춤'을 가슴에 담고 있을 것입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