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 치마 폭에 숨어 있을래?
언제까지 치마 폭에 숨어 있을래?
  • 충청타임즈
  • 승인 2010.12.06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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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자의 목소리
강연철 <음성 감곡성당 보좌신부>

얼마 전 광저우 아시안 게임이 끝났습니다.

우리 선수들은 목표로 했던 순위에 올랐고, 예상 메달 개수를 뛰어넘는 쾌거를 보여줘 국민에게 웃음꽃을 선사했습니다. 하지만 호사다마라고 했던가요 기분 좋은 일과 함께 이 기간 우리 국민은 어이없는 사건을 겪어야 했습니다. 태권도 판정시비에 따른 대만 사람들의 반응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경기는 한국인 선수가 참가하지도, 한국인 심판이 판결을 내린 것도 아닌, 한국과 관련된 것이라곤 태권도 종주국이라는 것밖에 없었습니다. 대만 선수가 지니지 말아야 할 장비를 지녀 실격패 한 것인데, 그들은 괜한 화풀이를 우리에게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대만사람들은 그 일을 계기로 한국 전자제품 불매운동을 비롯해, 태극기를 찢어 불태우는 상황을 연출해 방송했고, 한국인 학교에 계란을 투척하는 등 격앙된 감정표현을 했습니다. 거친 항의를 받으면서도 우리는 저들이 왜 그러나 이유를 잘 몰랐습니다. 그저 생떼를 쓰고 있구나, 저 생떼에 대만에 있는 교포들에게 피해가 가는 것은 아닌가 걱정이 될 뿐이었습니다. 저도 속으로 '저래서 떼놈들이라 했나보군' 생각하면서 올해 대만으로 유학 나간 동기신부가 걱정되었습니다. 혹시 대만사람들에게 한국인이라고 테러를 당하는 것은 아닌가 싶어 안부 메일을 썼습니다. 다행히 동기 신부는 잘 지내고 있다는 답을 보내왔습니다. 그러면서 왜 그들이 저리도 민감하게 반응하는가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고, 그러고 나니 그들 행동이 이해됐습니다.

동기신부의 설명대로 대만은 냉전체제가 무너지고 모든 나라들이 실리 위주의 외교를 하면서 국제 사회에서 왕따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대만과 수교하던 국가들이 수교를 철회하고 본토의 중국과 수교를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대만은 더 이상 독립국가로서의 위상을 잃게 되었습니다. 독립국가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 올림픽이나 아시안 게임 같은 국제 운동 경기에서 메달을 따도 국기를 걸지 못하게 되는데 그래서 대만 선수들이 메달을 딴 경우 올림픽기가 올라갔습니다. 그들은 대만이라는 국호도 중화 타이베이, 즉 중국의 타이베이란 형식으로 국가를 표시해야 했는데, 이는 중국 영토의 한 부분이란 뜻입니다. 상황이 이러하니 분통이 터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어쩜 그들의 생떼는 국제사회에 대한 울분의 외침이었습니다. 힘없는 나라의 아픔을 그대로 드러내는 사건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기간 공교롭게도 연평도 군사적 대치가 발생했고 아직까지 긴장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우리 군은 훈련 중에 북쪽 공격을 받았고, 훈련이 실제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평시 상황도 아니고 전쟁을 대비한 훈련의 상황에 공격을 받았는데, 대응 사격이 무려 14분이나 지난 다음에야 이뤄졌습니다. 무지한 사람도 전쟁에서는 1분1초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14분이 지나서야 대응이 이뤄졌다 하니 뭔가 석연치 않습니다. 전문가가 아니니 단정지어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 듭니다. 대만과 같이 힘없는 작은 나라이기 때문에, 군사적 독립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혹시 미국 허락 받느라 그랬나 전시 작전권이 없는 나라임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분명 주권을 가진 대한민국 국민임에도 이런 이유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미국에 예속돼 있는 느낌입니다.

현대사를 겪으며 대만과 우리나라는 서로 비슷한 상황을 살아 왔습니다. 그러다가 국제정세의 힘이 재편되면서 대만은 현재의 안타까운 상황이 됐으며, 우리 역시 미국 그늘을 벗어나지 못한 안타까운 상황을 살고 있습니다.

얼마 전 끝난 G20 정상 회담 때도 우리나라만 끝까지 미국편을 들었다는 것을 보면 그 정도가 어떤지 알 수 있습니다. 언제까지나 우리는 미국 엄마의 치맛자락만 잡고 있어야 하는 것일까? 위기 상황에서 미국만을 쳐다보고, 이런 위기 때문에라도 미국에 더 의지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우리가 대만과 다를 것이 무엇인가 자문하게 됩니다. 대만은 지금 당장 얻어터져 피를 흘리고 울고 있지만, 그 모습이 차라리 낫겠다, 언제까지인지도 모르고 엄마 치마폭에 싸여 의존해야 하는 한심한 우리보다 더 빨리 스스로 성장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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