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경
하루 종일 아무 말도 안 했다.
산도 똑같이 아무 말을 안 했다.
말없이 산 옆에 있는 게 싫지 않았다.
산도 내가 있는 걸 싫어하지 않았다.
하늘은 하루 종일 티 없이 맑았다.
가끔 구름이 떠오고 새 날아왔지만잠시 머물다 곧 지나가 버렸다.
내게 온 꽃잎과 바람도 잠시 머물다 갔다.
골짜기 물에 호미를 씻는 동안손에 묻은 흙은 저절로 씻겨 내려갔다.
앞산 뒷산에 큰 도움은 못 되었지만하늘 아래 허물없이 하루가 갔다.
시집 ‘해인으로 가는
길’(문학동네)중에서
<감상노트>
나무가 바람에 겨워 흔들리고, 그 나무에 세든 작은 새들이 소란스러울 산중인데도, 산과 시인은 아무 말 없이 하루를 보낸다고 한다.
시인과 산이 서로 하루를, “왜 말 없이 지내시는가?” 무심히 묻듯 바라보는 눈빛이 곱다.
너그러운 자연에 귀의한 시인은, 가끔 호미 씻는 중에도 손에 배인 몇 겹의 세속의 때도 흘려보낼 줄 아는가 보다.
사람의 마을에 산이 그늘을 살포시 덮어주며 노을이 들면, 허물없이 떠나는 것들의 어울림이 고즈넉하다.
저 풍경을 성경(聖經)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렇지 않은가요,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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