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선 5기와 첫 행정사무감사
민선 5기와 첫 행정사무감사
  • 남경훈 기자
  • 승인 2010.11.14 21: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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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남경훈 편집부국장

퇴직한 도청 국장 A씨는 재임 당시 별명이 '지당대신(至當大臣)' 이었다.

도의회 행정사무감사 때 의원들의 지적을 받을 때마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라며 고개만 꾸벅였다. 심지어 논리에 맞지 않는 억지성 지적이 나와도 "지당하십니다"라고 맞장구를 쳤다. 너무 비굴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그는 "대꾸를 하다 크게 얻어맞을 수 있다. 차라리 이게 편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죄송 대신, 검토 대신, 추후보고 대신 등등….

지방의회 행정사무감사 때마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집행부 담당 국장들의 별명이다. 그렇다고 감사에 임하는 의원들 역시 공무원들의 전문성을 따라잡지 못해 본질에 접근하지 못한 경우가 허다했다. 매번 수박 겉핥기식 감사가 되곤 했다. 오죽했으면 '호통감사', '억지감사', '추인감사' 등의 비아냥까지 나올 정도였다.

한결같이 의원들의 소극적 자세, 전문성 부족, 사명감 부족을 질타하는 표현들이다. 이렇다 보니 행정사무감사 무용론이 제기되기도 했다.

각 시·도마다 집행부에 대한 의회의 행정사무감사가 시즌을 맞고 있다. 충북도의회도 오는 23일부터 행정사무감사 일정에 돌입한다. 민선 5기 지자체에 대한 첫 감사이자 제9대 의회의 첫 행정사무감사이기도 하다. 이번만큼은 도의회가 제대로 된 감사를 할 수 있을지 도민들은 예의주시하고 있다.

행정사무감사는 집행부의 사무 처리가 일정한 규정이나 원칙에 따라 체계적·효율적으로 이루어졌는가를 살피는 감사이다. 정책과 인·허가 등 행정행위 전반을 살펴 위법·부당성을 밝혀냄은 물론, 행정처분의 취소나 원상회복 등의 시정·개선을 도모하는 활동이다.

그럼에도 지금껏 행정사무감사는 피감기관의 소극적인 태도와 지방의원들의 준비 소홀로 이런 목적을 실현시키지 못했다. 집행부는 예민한 자료의 제출을 기피하거나 제출시기를 늦추고, 감사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의원들을 상대로 관행적인 유무형의 작업들을 해 왔던 게 사실이다.

느슨한 감사는 결과적으로 느슨한 행정을 부른다. 엄격한 관리 및 감시체계가 확립돼 있지 않으면 행정행위에도 이완현상이 발생하고 비효율과 적당주의, 그리고 비리가 개입될 개연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하지만 과거의 좋지 않은 사례에도 불구하고 이번 충북도의회의 행정사무감사에 기대를 갖는다. 지방권력 자체가 대거 교체된 가운데 의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신선함을 주기에 충분하다. 여기에 다양한 사회경험을 통해 축적된 전문지식 또한 풍부하다.

그러나 8대 의회와 같이 집행부와 의회를 한 정당이 독식한 구조 속에서 의회가 얼마나 감사 기능을 갖고 실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는 역시 의문이다. 그나마 한나라당이 의회를 집권했던 8대에서는 친이 친박이라는 계파 간 경쟁 구도 속에 같은 당이라 해도 긴장감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집행부에 대한 인사검증을 시도하는 등 견제심리가 강했다.

이에 반해 이번 9대 의회에 걸었던 기대는 이미 지난 회기를 통해 제기된 오송메디컬그린시티의 논쟁을 보면서 벌써 꺾였는지도 모른다.

이런 비난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부적절한 행정에 대해서는 가차없는 지적과 함께 개선을 이끌어내고, 지역민심과 괴리된 정책이나 사업에 대해서는 간극을 좁혀주는 본연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전문가들을 상대로 한 감사인데 그들보다 공부가 덜 돼 있다면 어떻게 잘못을 지적해 낼 수 있겠는가.

철저한 감사는 집행부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더 큰 행정의 오류를 차단할 수 있는 기회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변화된 행정사무감사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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