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희와 황장엽
최윤희와 황장엽
  • 문종극 기자
  • 승인 2010.10.10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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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문종극 편집국장

○ 작가이자 방송인 최윤희씨가 남편과 함께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이 알려지자 그를 알고 있는 사람들의 반응이 엇갈렸다.

"밥은 굶어도 희망은 굶지말아야 한다"며 희망을 노래했던 '행복전도사'의 극단적인 선택이 혼란스러웠기 때문이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지만 일각에서는 "끝까지 희망을 버리지 말았어야 했다"며 행복전도사의 선택을 안타깝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녀에게 뭇사람들의 그것처럼 '자살은 범죄행위'라고 몰아세우지는 못하지만 '자살만은 피했어야 했다'는 것을 에둘러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저서 '웃음 비타민'을 통해 "쭉쭉 빵빵 키워야 할 것은 자신감, 희망, 용기, 사랑! 당장 삭제버튼 눌러야 할 것은 두려움, 미움, 갈등, 게으름!"이라고 설파했다. 수많은 강연과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서도 '긍정의 힘'을 전파해 왔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녀는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생을 마감했다.

전문가들은 '행복전도사'라는 닉네임이 그에게 굴레를 씌웠다는 분석을 잇따라 내놓았다. 자신의 직업과 행복전도사라는 별명 때문에 속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만한 곳이 없었을 것이라는 것.

다 갖고 살 것 같은 사람들이 외부의 자신에 대한 고정관념 때문에 위축되고 오히려 사회성이 결여되는데 이런 경우 오히려 문제를 속으로만 끌어안고 있어 평소 명랑해 보이는 사람도 우울증을 앓을 수 있다는 것이다.

최씨는 '떠나는 글'이라는 유서에 여러 번 "정말 죄송합니다. 용서를 구합니다."라고 했다. 희망을 외쳤던 '행복전도사'의 극단적인 선택이 죄송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그녀는 "700가지 통증에 시달려 본 분이라면 저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해 주시리라 생각합니다."라고 부언함으로써 자신도 '행복전도사'이기 전에 한 인간이었음을 알렸다.

○ 북한과 남한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한평생을 구가한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비서가 10일 오전 숨졌다. 1997년 2월 망명 당시 직책은 노동당 중앙위 국제담당 비서였던 그는 남한으로 망명한 북한 권력층 중 최고위직이었다. 그래서 그는 한국에서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관심을 모았던 인물이다.

하와이대 명예교수 굴렌 페이지 박사('한국 전쟁 참전 결정과정'의 저자)는 1997년 4월 한국의 한 일간지에 보낸 독자편지를 통해 황장엽의 정치사상 가운데 가장 중요한 점은 인간의 창조적 사랑, 그리고 평등성에 관한 것이며, 그는 남북 양쪽으로부터 초월적인 평화일꾼으로 존경받아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에 대한 관심의 반증이다.

그가 사망하자 여야 정치권도 일제히 애도의 뜻을 표하면서 민족의 평화를 위해 헌신한 인물로 높이 평가하고 있다.

이렇듯 북한의 주체사상을 완성한 인물이지만 망명한 후 남한에서도 못지 않은 대우를 받았다. 평범하지 않은 인물임에 틀림이 없다.

○ 행복전도사 최윤희 그리고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비서. 최근 잇따라 유명을 달리한 이들은 각기 자기 분야에서 한 시대를 풍미한 걸출한 인물이다.

절망을 모를 것 같았던 최윤희, 체제를 달리하면서도 우대 속에서 민족평화를 부르짖었던 황장엽. 그들은 서로 연관점이 없지만 자연 앞에선 인간이라는 점만은 같다. 이들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그렇다.

자연 앞에 인간은 한낱 미물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인간들은 오늘도 오만과 착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끊임없이 부와 권력을 위한 욕망덩어리 키우기에 골몰하고 있다. 어느 순간 욕망을 벗어던져 버렸다는 행복전도사 최윤희씨가, 권력의 정점을 버리고 남으로 향한 황장엽씨가 덧없음을 보여줬는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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