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 때문에 애그플레이션?
김치 때문에 애그플레이션?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0.10.04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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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보은·옥천·영동>

농업과 인플레이션의 합성어인 애그플레이션(agflation)은 급등하는 농산물 가격이 전반적인 물가상승을 주도하는 현상이다. 이 현상은 지난달 러시아가 밀, 옥수수 등 곡물수출금지 조치를 1년간 연장한다고 밝히면서 국제적 걱정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러시아의 밀을 주로 수입했던 중동과 북아프리카 바이어들이 미국과 유럽산 밀을 집중 매수하며 밀 가격이 연초보다 70%나 오른 것이다. 이 여파로 모잠비크에서는 정부가 빵값 30%를 인상하기로 했고, 이에 반발한 폭동이 일어나 7명이 사망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도 대책을 위해 비상회의를 소집했다.

중국도 농산물 가격 급등에 이어 돼지고기와 계란 등 축산물 가격까지 큰 폭으로 오르면서 애그플레이션을 걱정하고 있다. 농축산물 값이 요동을 치며 지난 7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21개월 만에 최고치인 3.3%를 기록했다. 지난 2007년에는 곡물값 폭등으로 방글라데시와 멕시코 등에서 폭동이 일어났고, 당시 아이티와 마다가스카르는 그 여파로 정권이 교체되기도 했다.

배추값 쇼크에 빠져 있는 한국도 이제 애그플레이션을 걱정하는 소리가 나온다. 배추값이 비싸 김치를 담가 먹지 못하던 사람이 남의 밭에서 배추 10 포기를 뽑아 나오다 붙잡힌 사건이 언론의 주요기사로 다뤄질 정도다. 시장 가격으로 쳐서 절도 가액이 10만원을 훌쩍 넘기니 엄연한 범죄이긴 하지만, 예전 같으면 서리 수준에 불과했을 행위다. 그만큼 현재 진행 중인 김치 파동이 심상찮다는 얘기다.

이제 식당에서 김치를 추가 주문하는 것은 지각없는 행동으로 인식되고 있고, 김치값을 따로 받는 상행위에 대해서도 야박하다는 반응은 사라졌다.

김치찌개나 보쌈 등 김치를 주재료로 사용하는 음식은 일제히 가격이 올라 직장인들의 점심값 부담도 커지고 있다. 급기야 배추값 인상에서 촉발된 불안심리는 전반적인 물가 상승세로 치닫고 있다. 우선 농산물 가공식품 값과 외식비용 상승이 주목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공공요금과 원자재 가격이 뛰기 시작한 시점이다. 지난 8월에 전기요금이, 9월에는 가스요금이 올랐고, 이달에는 LPG 값이 오를 전망이다. 배추값 인상이 불안해진 물가정국에 뇌관으로 작용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것이다.

농산물은 체감물가에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줘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자극하는 대표적 소비재이다. 인플레 기대심리가 커지면 경제주체들은 물가의 동반 인상에 대비해 가격 인상이나 가수요에 나서며 물가 상승을 부추길 가능성이 높다. 당분간 인플레이션 우려가 없다는 당국의 분석과 달리 소비자물가가 이미 지난달 한국은행 안정 목표치인 3%선을 훨씬 넘어선 것이 그 반증이다.

정부는 무관세 적용을 통해 중국 배추와 무를 대량 수입할 계획이지만 중국에서도 연일 배추값이 폭등하면서 물량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최근 보름새 산동성 등 중국의 주산지에서도 배추값이 70~80%나 치솟았다고 하니 수입을 통해 해결책을 찾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답답한 마음 한 켠에서는 소비자들까지 김치 파동에 일조하는 것은 아닌지 자조적인 생각도 하게 된다. '이 세상에 김치 없으면 무슨 재미로...' 라는 노래가 있을 정도로 우리 밥상에서 김치가 차지하는 위상은 절대적이다. 그러나 국제적으로 애그플레이션을 초래했던 밀이나 옥수수와 달리 김치는 주식이 아니라 엄연한 부식(副食)이다반찬에 불과한 김치 때문에 국가경제가 흔들리고 국민적 소동이 벌어지는 것은 코미디이거나 호사이다. 상에 밥이 오르지 않는다면 위기의 식단이지만, 김치가 없다면 다소 불편한 식단일 뿐이다. 배추가 아니라 쌀값이 이렇게 춤을 추면 어떻게 버티겠는가정부나 공급 당사자들뿐 아니라 소비자들도 배추 소비를 과감하게 줄이며 시장과 물가 안정에 기여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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