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린 날도 좋다… 절경에 반하고 정취에 취하고
흐린 날도 좋다… 절경에 반하고 정취에 취하고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0.09.02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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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가을에 찾는 이곳 (영동 천년사찰 반야사)에서…
반야사에 들어서면 스님들이 수행하는 선방 뒤편 녹음 사이로 선명하게 드러난 호랑이 형상이 눈길을 끈다.

고색창연 극락전·500년 배롱나무 감탄

문수전·망경대서 내려다 본 절경 일품

나오는길 '한천팔경' 월류봉 꼭 들러야

빗줄기가 일상이 돼버린 요즈음, 한가한 주말을 맞고도 집을 나서기가 수월찮다. 연일 찌프린 날씨에 주말 나들이를 놓고 망설이는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곳이 영동군 황간면 백화산 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천년사찰 반야사(般若寺)다.

반야사는 신라시대인 720년 의상대사의 제자인 상원 스님이 창건한 절. 절 주위에 지혜를 주관하는 문수보살이 상주한다고 해서 반야사라고 명명했다 전해진다.

우선 일주문에서 사찰까지 이어지는 진입로가 일품이다. 맑고 수량이 풍부한 데다 기암괴석을 두루 걸친 석천을 끼고 500여 m를 이어지는 이 길은 오히려 요즘처럼 잔비가 오락가락하는 흐린 날 걷기에 제격이다. 주변의 정취에 빠져들 때쯤이면 길이 끝나버려 사찰에 도착하는 것이 아쉽긴 하지만 이만한 산책로는 전국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반야사는 고찰이지만 고건축물은 많지 않다. 그러나 20여년 전 현 대웅전을 신축할 때까지 대웅전 역할을 했던 극락전은 고색창연한 향기를 풍긴다. 극락전 앞에는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3층석탑과 수령이 5백년이나 되는 배롱나무 두 그루가 가지런히 서 있다.

3층석탑은 원래 석천 계곡 위쪽으로 1km쯤 떨어진 탑벌에 있던 것을 1950년에 경내로 옮겨왔다. 배롱나무는 조선 건국 당시 무학 대사가 지팡이를 꽂아둔 것이 둘로 쪼개져 한 쌍을 이뤘다고 한다. 껍질 하나 없이 속살을 드러낸 아름드리 고목이 가을이면 새빨간 꽃잎의 물결을 만든다.

무학대사의 지팡이가 변신했다는 전설을 갖고 있는 한쌍의 배롱나무가 사찰 마당에 서 있다. 그 사이로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3층석탑이 보인다.



석탑과 배롱나무를 구경하고 절 마당에 내려서면 맞은편에 망경대와 문수전 가는 길을 일러주는 안내판이 보인다. 석천을 왼편에 끼고 절의 서북쪽으로 난 길을 따라 2백m쯤 올라가면 바닥에 너른 돌들을 품고 있어 더욱 맑아보이는 영천이 나온다. 세조가 법주사 법회에 참석한 후 돌아가다가 문수 보살의 안내로 이곳에서 목욕한 뒤 피부병이 깨끗이 나았다는 일화가 전해지는 곳이다.

영천 위로는 깎아지른 절벽 꼭대기에 조그만 집 한 채가 서 있다. 문수 보살을 모신 문수전이다. 가파른 돌계단과 나무계단을 타고 곡예하듯 올라가서야 문수전을 만난다. 문수전이 선 곳은 '문수 바위'로 불리는 망경대. 문수 보살이 빼어난 주변 경관을 굽어봤다는 곳이다. 문수전 앞에 서면 산을 굽이쳐 내리는 석천과 주변 산세가 어우러진 절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반야사에서 만날 수 있는 아주 독특한 풍광의 하나가 반야사와 백화산이 어우러져 빚어낸 호랑이 형상이다. 반야사에서 계곡 건너편에 있는 백화산을 바라보면 수천년 동안 흘러내린 파쇄석이 산허리에 쌓여 있는데, 그곳에 자연스럽게 형성된 호랑이 형상이 방문객들의 눈길을 끈다. 80m 높이의 웅장한 형상에 몸통 길이가 300m에 달해 문수보살이 타고 다니던 호랑이라고 전해진다. 문수도량에서 노닐다 백화산에 넋을 묻은 호랑이의 곧은 기개가 절로 느껴진다.

이곳에 들렀다가 그냥 가버리면 두고두고 아쉬움이 될 곳이 절경에 심취해 달도 머물다 간다는 월류봉(月留峰)이다.

반야사로 들어가는 독점삼거리에서 불과 1km 정도 떨어져 있어 나오는 길에 들르는 것이 좋다. 월류봉에 반한 우암 송시열이 이곳에 한천정사를 짓고 아침마다 월류봉 중턱 샘까지 오르내렸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 8개 명소를 한천팔경이라 부르는데, 월류봉이 8경의 백미다.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월류봉도 좋지만, 월류봉에 올라 내려다본 모습이 일품이다. 원촌리 주차장 앞에서 월류봉을 보면 구비구비 휘어져내려가는 초강천 뒤로 송곳처럼 우뚝한 봉우리 6개가 부챗살처럼 펼쳐진다. 맨 왼쪽 봉우리 앞으로 월류정이란 정자가 날아갈 듯 앉아 나그네를 유혹한다.

강 건너편에서 바라본 월류봉. 봉우리 위에 날아갈 듯 자리잡은 월류정이 우아한 산세와 어울려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시킨다.


◇ 여행가이드

△ 가는 길

경부고속도로 황간IC에서 빠져나와 황간면 소재지쪽으로 향하면 '반야사 9km'라는 이정표가 나온다. 이정표를 따라가면 10분 내에 사찰 진입로에 도착. 일주문 앞 주차장에 차를 대고 오솔길을 산책하듯 걸어들어가는 것이 좋다. 경부선 열차가 황간역에 서긴 하지만 하루 14차례(상하행선 각 7차례씩)에 불과하다. 영동역에서 내려 황간면을 운행하는 시내버스를 타면 된다. 황간면에서는 90분에 1대꼴로 절에서 4km 떨어진 독점삼거리까지 가는 버스가 운행된다.

△ 먹을거리

반야사 입구에는 깔끔한 민박집들과 함께 토종닭으로 백숙이나 닭볶음탕을 해주는 식당도 서너 곳 있다. 식사가 부담스러우면 검은 콩으로 만든 구수한 손두부에 동동주를 한잔 걸치며 간단히 요기를 할 수도 있다. 월류봉에는 쏘가리나 동자개 등 민물고기로 맛깔스럽게 매운탕을 끓여내는 식당이 여럿 있다. 경치 구경이 아니라 매운탕을 맛보기 위해 찾는 사람도 많을 정도로 월류봉 매운탕은 미식가들에게 정평이 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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