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어 이야기
병어 이야기
  • 충청타임즈
  • 승인 2010.08.06 09: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충청논단
정규호 <문화콘텐츠 플래너>

병어는 몇 안 되는 여름철 생선이다.

게다가 내게는 돌아가신 아버님 생각을 새삼 간절하게 하는 추억의 먹을거리이기도 하다.

나는 지금도 전국에 제법 이름이 알려진 청주 육거리 시장통에서 나고 자랐다.

지금은 상설시장으로 변모했지만 내 어릴 적 시장은 육거리라는 이름 대신에 석교동, 혹은 남주동 시장이라는 이름으로 더 알려져 있었다.

당시에는 지금 같은 상설시장보다는 5일장이 더 인기가 있어 장꾼들도 대부분 장날에 맞춰 시장을 찾았고, 때문에 장날에는 무척 많은 사람들로 붐볐던 시장통의 풍경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먹을거리가 풍부하지 않았던 시절이었으니 장날을 맞아 펼쳐지는 국밥집은 물론이거니와, 커다란 항아리에 담아 지게에 지고 다니며 사람들을 유혹했던 초콜릿 색 자장면의 냄새는 추억만으로도 충분히 입에 침을 고이게 한다.

아버지는 병어를 무척 좋아하셨다. 안팎으로 궁핍했던 시절, 맛난 것이 생기면 자식들 입을 우선했던 당연한 내리사랑에도 병어는 항상 예외였다.

온통 육지로 둘러싸여 바다구경은 좀처럼 할 수 없었던 지리적 환경에서 생선이 식탁에 오르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더군다나 그런 생선을 날것인 채로 먹을 수 있는 여름 입맛의 호사는 병어가 아니면 좀처럼 누릴 수 없는 기회였으니, 자식들 입이 우선되는 윤리적 가치관조차 그 유혹을 이기기 쉽지 않으셨을 테지.

반짝이는 은색으로 통통한 모양의 몸체를 지닌 병어는 우리나라 서남해안에서 많이 잡힌다.

신선한 상태로의 운송수단이 제대로 발달하지 못했던 시절, 바다를 떠나 내륙도인 청주의 장날에 맞춰 눈부신 자태를 뽐내던 병어.

파장이 된 후 그 아름다운 병어를 뼈째 썰어 초고추장에 찍어 드시면서 고단한 하루를 삭이시던 아버지의 모습과 그중 몇 점을 얻어먹으면서 여름철 별미를 만끽했던 기억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지난 6월 병어축제를 기획했던 전라남도 신안군이 병어가 잡히지 않아 울상을 짓고 있다는 소식에 이어 최근 한 일간지가 2050년이 되면 우리 식탁에서 생선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 경고성 보도를 했다.

과학 전문지 네이처를 인용한 이 신문의 보도는 1950년대 이후 지구 바다의 식물성 플랑크톤이 40%나 감소했으며, 이런 추세라면 2050년쯤이면 인류의 식탁에서 생선이 완전히 사라질 것이라는 내용이다.

식물성 플랑크톤의 감소는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해수면의 온도가 상승하면서 해수의 뒤섞임 현상이 둔화됨에 따라 나타나는 것으로, 해수의 뒤섞임 현상은 심해의 풍부한 무기질 성분을 해수면 가까이 끌어 올려 식물성 플랑크톤의 광합성 활동에 필요한 무기질 영양분을 제공하는 역할을 해 왔다는 설명이다.

결국 인간이 주범이라는 얘기인데, '시네마천국'이라는 고전적 영화에서 주인공 살바토레를 연기한 프랑스의 배우 겸 다큐멘터리 영화 감독 자끄 페랭(Jacques Perrin)의 영화 '오션스(Oceans)'를 보면 차라리 인간이 혐오스러울 정도다.

고급 상어지느러미요리를 위해 살아 있는 바다 속 생명체를 잡아 등과 꼬리지느러미만을 잘라 낸 뒤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다시 바다로 버리는 인간의 먹을거리에 대한 탐욕의 끝은 어디까지인가.

※ 사족: '오션스(Ocences)' 한국 개봉판의 치기는 또 어떤가. 빵꾸똥꾸가 난무하는 가운데 인간에 대한 준엄한 경고를 전달하기 위해 다큐영화를 감독하고 각본을 쓰며 프랑스판 내레이션까지 맡았던 거장 자끄 페랭의 노력을 무색하게 하는 참을 수 없는 가벼움.

그거 아니라도 폭염에 진저리를 치게 되는 요즘, 바다 속 청량한 화면이 치기어린 한국말 내레이션으로 짜증이 배가되는데.

모처럼 식탁에 오른 병어찜 한 점에 사람의 본질까지 떠올리며 생각이 많아진 것이 혹시 더위를 먹은 건 아닌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