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고향을 찾아서 <3>
작가의 고향을 찾아서 <3>
  • 연지민 기자
  • 승인 2010.07.29 22: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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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용 충북 옥천
향수의 고장…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서정시인 고향 가는 길 옛 정취·풍경 고스란히

초가로 지어진 아담한 생가 곳곳 흔적 엿보여


넓은 벌 동쪽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밭에 밤바람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조름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정지용 '향수' 중에서

고향이란 사람이 나고 자란 터전이다. 언제나 찾아가도 늘 그곳에 있는, 땅 깊이 뿌리 내리고 의연하게 서 있는 느티나무 같은, 투박한 어머니의 웃음이 곳곳에 배어 있는, 생각의 언저리에서 뿌옇게 물안개처럼 피어나는 곳, 그곳이 바로 고향이다.

사람의 근본이기도 한 고향은 이제 현대인에게 너무 먼 그리움이 되었다. 현대화로 푸근한 고향이 사라지면서 현대인들의 고독 또한 차갑게 깊어진다.

이런 현대인들에게 마음의 고향을 안겨주는 시인이 있다. 한국의 대표적인 서정시인 정지용이다. 쓸쓸할 때, 누군가가 그리울 때 시인의 고향은 어머니의 품처럼 고향이 되어 준다.

시인의 고향 가는 길은 시 '향수'처럼 정겹다. 지금은 고속도로가 뻥 뚫려 찾아가기도 쉬워졌지만, 시인을 찾아가는 길은 폭 좁은 옛길이 제맛이다.

가로수 사이로 햇살 자락을 보내는 파란 하늘과 동동 흘러가는 구름을 이고 시인을 찾아나서면 노래 '향수' 한 가락도 절로 흥얼거리게 된다.

옥천으로 들어서면 작은 도시 곳곳에서 시인의 체취가 온몸에 전해진다. 공기부터 다른 시골도시는 이곳을 찾는 이도 시인이게 한다. 한 발 한 발 작가를 좇아 가는 길도 즐겁다.

나트막한 초가지붕 옆으로 실개천 자락이 멀리 꼬리를 감춘다. 황토색 흙담과 사립문, 그리고 시인의 빈 자리를 지켜주는 듯 마당 한 구석엔 감나무가 사람들을 맞이한다.

시인의 시의 에너지원이요, 샘물과도 같던 고향 생가에는 이미 숱한 사람들의 발길로 가득하다. 천재 시인의 발자취를 따라 온 젊은 문학도도 있을 테고, 고향이 그리워 찾아든 이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자리에 가만히 서서 그의 흔적을 좇는다. 주옥같은 시를 쓰기 위해 시인은 얼마나 많은 밤을 지새며 산고를 겪었을까 시대의 소용돌이에서 그에게 문학은 또 다른 비상구이지 않았을까

잘 정돈된 시인의 집에는 그의 시와 단출한 가구들이 은은한 문향을 전해준다. 금방이라도 아궁이에 걸린 무쇠솥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날 것 같은 상상도 현대인들에게 고향에 닿은 듯한 안온함을 준다.

격정의 시대를 문학적 열정으로 다한 정지용 시인. 산고로 얻은 그의 시는 시간이 지날수록 빛을 발하며 고향잃은 현대인들에게 따스한 눈길을 보내고 있다.

◇ 정지용은 누구

1902년 5월15일 충북 옥천군 옥천읍에서 태어난 정지용은 옥천공립보통학교(현재 죽향초등학교)와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해 문학의 길에 들어선다.

휘문고 재학당시 3년 선배인 홍사용, 2년 선배인 박종화, 1년 선배인 김윤식, 1년 후배인 이태준 등과 인연을 맺으며 뛰어난 시인으로의 태동을 예고한다.

'서광' 창간호에 소설 '3인'을 발표한 것이 지용의 유일한 소설이자, 첫 발표작품이 된다

이후 활발한 문학활동과 함께 시문학동인으로 참가하면서 1930년대 시단의 중요한 위치에 서게 된다.

1950년 6·25전쟁이 일어나자 정치보위부로 끌려가 구금되었고, 서대문형무소에 수용되었다가 평양감옥으로 이감됐다가 그 후 폭사 당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1988년 해금조치로 주옥같은 그의 시가 다시 빛을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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