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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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청타임즈
  • 승인 2010.07.29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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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오창근 <칼럼니스트>

본격적인 피서철이 되었다. 더위를 피해 산과 바다로 떠나는 피서 차량으로 고속도로가 붐빈다. 어린 시절 푹푹 찌는 삼복더위를 피해 마을 사람들이 가까운 계곡을 찾아 가마솥에 개장국 끓이고, 통 막걸리 냇가에 담가 두고 차일 속에 앉아 무더위를 식히던 모습이 생각난다.

멀리 갈 형편도 안 되니 가까운 이웃끼리 잠시 바쁜 일손을 놓고 천렵을 하던 모습은 지금은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니다. 산과 바다로 떠나는 피서가 연중행사가 되고 가까운 이웃과 함께하는 정겨움은 추억이 되어 버렸다. 교통편도 좋지 않고 에어컨이나 선풍기도 없던 시절 옛사람들은 어떻게 여름을 났을까

다산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은 '소서팔사 (消暑八事)'라 하여 '더위를 식히는 8가지 방법'이라는 시를 지었다. '솔밭에서 활쏘기, 느티나무 아래에서 그네 타기, 대자리 깔고 바둑 두기, 연못의 연꽃 구경하기, 숲 속에서 매미 소리 듣기, 비 오는 날 한시 짓기, 달밤에 발 씻기' 등과 같은 피서법을 소개하고 있다. 멀리 가지 않고 집 가까운 곳에서 실천할 수 있는 피서법이다.

이 밖에도 조선 시대의 대표적인 피서법은 탁족(濯足)이 있다. 탁족은 발목을 흐르는 물에 담그고 열을 식히는 방법을 말한다. 그늘진 바위에 앉아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숲에서 부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땀을 식히는 탁족은 선비나 일반 백성이나 쉽게 접할 수 있는 피서 법 중 하나다. 풍류를 아는 선비라면 한 손에 책을 들고 나지막이 선현의 시구를 읊조렸을 것이다.

조선 시대의 세시 풍속을 기록한 동국세시기 유월조(六月條)에도 "삼청동 남북 계곡에서 발 씻기 놀이를 한다. (三淸洞 南北溪澗 爲濯足之遊)"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보아 우리 조상들이 가장 손쉽게 즐기던 피서 법이 아닌가 한다.

그러나 글 읽는 선비라면 더위에 호들갑을 떨기보다는 더위를 즐기며 가벼운 모시 적삼에 부채 바람으로 귀를 씻는 한갓진 피서 법을 선택했다. 이처럼 등거리를 입고 죽부인을 안고 자는 소극적인 피서법이 새삼 정겹게 느껴지는 것은 도심을 벗어난 해방감에 들떠 자칫 인명사고로 이어지는 교통사고와 수영 미숙으로 가족을 잃는 뉴스가 해마다 반복되고 또한, 청소년들이 친구들과 무리지어 떠나는 여행이 일탈로 이어져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안타까운 소식도 간간이 들려오기 때문이다.

더위를 피하는 것만 능사가 아니다. 가까운 산을 올라 땀을 흘리며 맑은 공기도 마시고, 찬 계곡물에 손을 담그고 그간의 어지러운 심사도 차분히 돌아다보는 여유를 갖는 것도 의미 있는 피서법이다. 또한, 농촌을 찾아 바쁜 부모님 일손을 돕는 것도 나름의 가치 있는 피서라 할 수 있다. 이처럼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바쁜 일상에 자신을 돌아보는 값진 기회로 삼았으면 한다.

에어컨의 찬바람과 냉장고 안에 시원한 음식이 지천인 현대에 한 번쯤 여유롭게 더위를 피하던 조상들의 여름나기를 실천해 보는 것도 좋은 일이다. 그리고 길섶의 고추와 깻잎을 몰래 따다 타박하는 농부에게 시골의 인심이 예전 같지 않다고 푸념하는 양심 없는 도시인의 모습은 보여 주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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