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자 없는 병원
보호자 없는 병원
  • 충청타임즈
  • 승인 2010.07.27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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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강태재 <충북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상임대표>

조선시대 효행의 기준을 논할 때, 대표적인 것이 단지(斷指)나 할고(割股)라고 알려져 있다. 단지는 손가락을 잘라 그 피를 먹이는 것으로서, 아주 위급할 때 행하는 일종의 응급조치법이다. 할고는 넓적다리를 나눈다는 뜻인데 부모를 위해 허벅지 살을 베어 먹이는 것이다.

오늘날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지만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효행의 기준은 간병이다. 조선시대 효자효부 선정기준을 몇 년간이나 부모의 대소변을 받아냈느냐, 즉 간병을 얼마나 오랫동안 했느냐에 두었다는데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은 그래서 나온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오늘날에 와서는 집 안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병원에서조차 간병을 한다는 것이 매우 어렵다. 직접 간병에 나서자면 직업을 포기해야 하고, 자녀교육 등 여러 가지 문제에 봉착한다. 그렇다고 따로 간병인을 두는 게 여의치 못하다. 웬만한 수입 가지고는 어림도 없다. 노부모의 간병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부부갈등, 형제자매 간에 벌어지는 불화는 가정파탄 집안싸움으로 이어지는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었다. 겪어 본 사람들은 다 안다. 그래서 '보호자 없는 병원'을 만들자는 데 적극 찬성이다. 필자도 그런 부류에 속한다.

이러한 현실에서 보건의료노조와 환자, 여성계, 시민단체 등이 나서 '보호자 없는 병원 실현을 위한 연석회의'라는 모임이 만들어졌고, 우리고장에서도 '충북형 보호자 없는 병원 실현을 위한 희망포럼'을 만들어 "보호자 없는 병원으로 좋은 일자리 창출과 간병 부담 해소" 기치를 높이 들고 나왔다.

흔히 '보호자 없는 병원'을 '공동간병인제도'와 혼동하는데 엄연히 다르다. 공동간병인제도는 단순히 간병인을 투입해 공동으로 개인간병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인 데 비해, 보호자 없는 병원은 병원 내 간호와 간병 인력을 충분히 확보해서 입원환자에게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환자가족이 별도로 병실에 상주할 필요가 없는 병원을 말하는 것이다. 선진국의 병원이 그러하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해 국회에서 2010년 보호자 없는 병원 시범사업예산 44억 원이 책정됐다. 이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지만, 그동안 제도권 밖에서 시장에 맡겨졌던 개인간병문제가 사회적 해결을 위해 제도권 안으로 들어오게 된다는 의미를 갖는 것이다. 이러한 시범사업을 통해 향후 수년 안에 전면적인 보호자 없는 병원을 구현해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정부의 성의 있는 정책 추진 의지와 이를 견인해낼 국민의 관심과 참여다. 정부는 손쉽게 영리병원이나 민간의료보험으로 해결하고 싶은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간병서비스를 민간의료보험에서 보상하게 하자는 주장이 있으나, 이는 개인간병 부담의 사회적 해결이라는 제도화 취지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민간보험회사에만 이익보장이 될 뿐 환자에게는 손해이므로 반드시 건강보험급여로 해결해야 환자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것이다.

물론 간병서비스를 건강보험에서 해결하자면 일정부분 건강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하다. 간병서비스 소요예산 산정과 이에 따른 건강보험료 추가부담에 대한 논란은 폭넓게 개진되어야 하되, 어떠한 경우에라도 모든 병원비를 국민건강보험 하나로 해결하여 진료비 걱정 없는 나라, 보편적 복지국가를 실현해야 함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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