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에서는 소나기·햇볕도 한몫
전쟁에서는 소나기·햇볕도 한몫
  • 충청타임즈
  • 승인 2010.07.20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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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낙빈의 날씨에세이
김낙빈 <대전지방기상청장>

백년전쟁은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서 일어난 것으로 노르망디의 윌리엄이 영국을 점령한 후 양국 간에 쌓여 있던 감정의 골이 폭발하면서 무려 116년간을 끌었던 전쟁이다.

1346년 8월 26일 아침, 백년전쟁의 첫 대규모 전투가 플랑드르의 크래시에서 시작되었다. 영국의 에드워드 3세는 열세인 병력 수를 감안해 크래시 마을의 산등성이에 진을 쳤다. 산등성이는 마침 중앙 부근에 경작을 위해 만들어진 삼 단계 언덕이 있어 프랑스 십만 기병의 공격을 막기에는 최고의 환경인 데다가, 지리상 서쪽을 등지고 있어 프랑스군은 정면으로 햇빛을 받은 채 진격해야 했다.

이렇게 비장한 마음으로 전투가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 오후부터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했다. 이 지역은 원래 서안해양성 기후구에 속하여, 해안선에 가까운 크래시 지방은 소나기가 자주 내렸다. 프랑스군은 이 거센 소나기에 가려 크래시 가까이까지 와서도 산등성이에 주둔한 영국군을 전혀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다 소나기가 그친 후 바로 코앞의 영국군을 발견한 필리프는 서둘러 행군 정지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그의 명령을 듣지 못한 후미 부대가 계속 진군하면서 대열은 금세 흐트러졌고, 설상가상으로 프랑스군은 햇빛을 마주한 터라 전세는 더욱 불리했다.

결과는 영국의 승리. 이 전투를 기록한 역사서를 보면 프랑스 기사들은 자신들이 쓰러지는 순간까지 영국군의 석궁이 어디에서 날아오는지조차 제대로 보지 못했다고 한다.

프랑스군은 햇빛으로 적의 모습을 거의 볼 수 없었으며, 소나기로 젖은 땅 때문에 돌격 속도 또한 느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무적의 프랑스 철갑기사들이, 숫자로 볼 때 훨씬 열세였던 영국군에게 어이없이 무너졌던 이 전투. 이를 승리로 이끈 것은 바로 때맞춰 내려준 소나기와 햇빛이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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