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권자 실망시킨 승자독식
유권자 실망시킨 승자독식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0.07.12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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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편집부국장

이달 초 출범한 도내 일부 기초의회가 다수당의 의장단 독식으로 출발부터 삐걱거리고 있다. 의장은 다수당이, 부의장은 소수당을 배려해온 관행이 자취를 감췄고 사전에 소수당을 만나 조율하던 승자의 아량도 찾아볼 수 없었다. 영동군과 보은군의회의 경우를 보자. 다수당인 자유선진당이 승전군이 전리품을 챙기듯 자기들끼리 사전 인선을 마치고 표결로 밀어붙여 의장단을 자기 식구로 채웠다. 한나라당 등 소수당 의원들은 자리를 박차고 나가 표결을 보이콧하거나 기권으로 저항했지만 소수당의 한계와 설움만 곱씹어야 했다.

한나라당 일각에서는 "이미 후반기 의장단까지도 선진당이 독점하기로 하고 순서까지 정했으며, 소속정당 국회의원이 막후에서 조정했다"고 항변하고 있다. 사실이라면 선진당이 오판을 해도 단단히 했다고 봐야 한다.

선진당이 다수당이 됨으로써 선거에서 이긴 것은 맞지만 내용에서도 이긴 것은 아니다. 영동군을 보자. 정당에 투표하는 비례대표를 제외하고 군의원에 출마한 선진당 후보 5명이 얻은 표는 9151표다. 1명이 더 출마하긴 했지만 한나라당 후보 6명은 1만1734표를 얻었다. 격차가 2500여 표에 달한다. 득표율로 비교하면 한나라당은 42.4%, 선진당은 33%로 차이가 더욱 확연해진다. 절반이 낙선하며 소수당으로 전락했지만 지지율만을 놓고보면 오히려 한나라당이 선진당을 압도한 형국이다. 선진당은 비례대표에서도 이겼지만 득표율은 43%로 과반에 미달했다. 스포츠 기사에 가끔 나오는 표현대로 선진당은 '결과에서 이겼지만 경기에서는 진' 선거를 치른 것이다. 승자를 자처하기에 앞서 민심의 실체가 무엇이었는지 성찰했어야 하고 선거결과를 진정으로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할 상황이었다.

더욱 분명한 것은 한나라당 후보를 지지한 1만1734명은 물론이고 선진당 후보에 표를 던진 9251명도 이런 식의 야박하고 몰인정한 정치를 주문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다수당에는 포용을, 소수당에는 분발을 기대하는 것이 대다수 유권자들의 바람이다. 유권자의 목소리를 하늘같이 받들어 의정에 반영하겠다고 읍소하며 표를 간청한 것이 불과 한 달 전이다. 그 입에 침도 마르기 전에 오만과 독선으로 유권자의 소망과 선거결과를 왜곡한 꼴이 됐다.

이런 식의 승자독식주의에서 군의회가 제 역할을 할지도 문제다. 군수와 군의회 의장, 부의장까지 선진당이 싹쓸이한 마당에서 군정 견제가 이뤄지겠느냐는 것이다. 다수결의 횡포나 일방 행정이 우려되는 대목이다. 이번에 폭발한 소수당 의원들의 반발 정도로 봐서 앞으로 의회 내에 적지않은 불협화음도 예상된다. 세력 균형을 무시함으로써 원내에 냉기류를 초래한 다수당에 1차적 책임이 돌아갈 수밖에 없다. 결국 선진당의 의장단 독식은 명분도 실리도 잃는 '소탐대실(小貪大失)'에 그칠 공산이 높다.

부의장은 권위나 예우가 의장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의장 부재시 의회를 이끌어갈 예비 의장이나 마찬가지다. 의장 못지않은 경륜과 자질이 담보돼야 하는 자리이다. 과연 그 자리에 적임자를 앉혔는지도 자문해 봐야 한다. 당색이 같은 몇몇 의원이 나눠가지며 경력 관리용으로 다룰 자리가 결코 아니라는 얘기다.

패하긴 했지만 명색이 집권여당 의원에다 만만찮은 지지기반을 구축하고도 제몫 찾기에 실패한 한나라당 의원들의 무기력도 창찬할 것은 못된다. 선제적이고 적극적인 시도가 있었다면 결과가 달라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번 낭패를 심기일전의 계기로 삼고 모범적인 의정활동을 통해 만회해야 한다. 초장부터 유권자들에게 실망을 안긴 선진당 의원들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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