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석정에 흐르는 낭만
포석정에 흐르는 낭만
  • 충청타임즈
  • 승인 2010.07.08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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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영의 에세이
김우영 <소설가>

신라의 고도 경주 교동에 자리 잡은 '법주'가 있다. 신라인의 긍지가 서린 경주 법주는 현재 최씨 종가 댁(일명 최 부자 집)에서 대대로 빚어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전수되어 오는 술이다. 맑고 투명한 미황색을 낀 곡주 특유의 향기로운 냄새가 난다. 연한 단맛과 신맛을 함께 지닌 찐득찐득한 명주 중의 명주이다.

예로부터 승려들도 이 술을 곡차(穀茶)라 하여 애음해 왔다고 전해지는데 무려 2천년을 이어온 전통 있는 술이다. 술을 빚는 방법과 더불어 마시는 데도 까다로운 법도가 따랐기 때문에 법주(法酒)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전통과 예의범절을 중시했던 신라인의 정신을 엿볼 수 있다.

경주의 또 다른 명물은 포석정이다. 신라 경애왕이 포석정 흐르는 물에 술잔을 띄우고 여흥을 즐기고 있는데 갑자기 견훤의 군사가 쳐들어 왔다. 마침내 왕비는 적장들에게 윤간을 당하는 욕을 보았던 비애가 서린 곳이기도 하다.

포석정의 형상은 마치 전복을 뒤집어 놓은 꼴이다. 가장자리에 물이 흐르도록 하였다. 그 흐르는 물 위에 술잔을 잔대와 함께 놓으면 흐르는 물을 따라 술잔이 흐르게 되어 있다.

전복을 뒤집어 놓은 형상으로 되어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민속학자들은 이를 남녀의 성(性) 신앙을 숭배했던 신라 사회의 유물로 보고 있다. 큰 느티나무는 남자의 성기를 뜻하고 꼬불꼬불한 포석정 유배지(流配地)는 번성의 뜻을 지닌 여성의 성기를 지칭한다는 것이다.

포석정 주위에 둘러앉은 사람들이 자기 앞으로 떠오는 잔을 마시는데 약 8분 정도 걸린다. 이 정도면 사언시(四言詩)나 오언시(五言詩) 정도는 충분히 지을 수 있는 시간이다. 그 시간 안에 시를 지어 읊조리지 못한 사람은 벌주로 술 3잔을 마셨다고 한다.

신라 선덕여왕은 백제군이 신라 영토를 침범해 왔을 때 여근곡에 남근인 백제군을 몰아넣고 치면 남근이 여근 속에 들어가 살아나오는 법이 없다고 말했다. 이 여근곡은 꼭 여자의 음부처럼 생긴 지형인데, 푹 들어간 중심지점에 샘이 있고 주위 언덕에는 솔밭이 우거져 있는 경주시 신평동의 산자락이다. 지금도 이곳 마을 사람들은 여근곡을 신성시하여 보호하고 있다.

중국에도 유상곡수연(流觴曲水宴)이라는 것이 있었다. 궁중이나 선비들의 가정에 만들어 놓고 꼬불꼬불한 홈 따라 흐르는 물 위에 자기 술잔을 띄어 놓고 시를 한 수 지으며 여흥을 즐기곤 했다고 한다. 이것이 통일신라 때에 건너와 포석정(鮑石亭)으로 재현된 것이다.

이곳 포석정에서 여자들은 두 편으로 나뉘어 베 짜기 경기를 하여 진 편이 술과 음식을 장만해서 춤추고 노래하며 즐겼다. 신라시대에는 왕과 신하, 궁녀들이 수시로 이곳에 와서 술을 즐기며 연회를 열었다고 한다.

한잔의 술과 더불어 시를 읊조리는 낭만이 있던 유상곡수연. 오늘날 현대 문명의 이기 속에서 급하게만 살며 폭탄주니, 속사포주니 하면서 마시는 음주 풍경과 비교해 볼 때 격세지감이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술은 최고의 음식이며 최고의 문화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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