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건달 백문선의 고쟁이
백수건달 백문선의 고쟁이
  • 충청타임즈
  • 승인 2010.07.01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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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영의 에세이
김우영 <소설가>

조선 중엽에 '백문선'이라는 위인이 있었다. 집안 살림이 워낙 가난하여 아침을 먹으면 점심을 걱정하고, 점심을 먹으면 저녁 끼니를 걱정할 만큼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한 사람이었다. 그는 노력하여 잘살려는 게 아니고 건달들과 어울려 술만 마시고 다니는 백수건달이었다.

백문선에게는 어여쁜 외동딸이 하나 있었다. 어느덧 나이가 차 혼기가 되자 출가를 시키게 되었다. 다행히도 미색은 출중하여 서로 데려 가겠다고 했다. 주제에 백문선은 배짱을 탕탕 튕기다가 행세깨나 하는 부잣집으로 혼처를 정했다.

딸을 시집보내기 전날까지도 백문선은 코가 삐뚤어지게 술을 마시고 들어 왔다. 이를 본 아내는 답답했다.

"내일 후행(혼인 때 데리고 감)에 달리 갈 사람이 없으니 당신이 가시오!"

하고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백문선도 딸을 데리고 가야 하지만 입고 갈 만한 옷이 없어 걱정이었다. 가긴 가야 하는데 누덕누덕 기운 저고리는 두루마기 속에 감추니까 괜찮겠지만 때가 쪼르르 흐르는 바지를 입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술에 취해서 골똘히 생각에 빠져 있는 백문선을 보고 아내가 넌지시 말을 건다.

"이렇게 하면 어떻겠어요?"

"어떻게?"

"제 고쟁이를 입고 가시지요. 두루마기 속이니 재 고쟁이를 입으시고 대님만 맨다면 불편하기는 하지만 괜찮을 거예요."

"그렇지만 내가 어떻게 여자가 입는 고쟁이를 입는단 말이요?????????."

다음날 백문선은 딸의 후행을 나섰다. 옷은 없지만 간밤에 아내의 말처럼 고쟁이 위에 두루마기를 걸치고 딸과 함께 조심조심 걸음을 옮기며 사돈 될 집에 당도했다. 맞절이 서로 끝나고 폐백을 마치자, 역시 세도 있는 부잣집답게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진수성찬을 차린 술상이 나왔다. 그는 궁색한 살림에 그간 술자리에서 고깃덩어리 구경을 못한지라, 웬 떡이냐 싶어 사돈이 권할 때마다 술잔을 넙죽넙죽 잘도 받아 마셨다. 평소의 성격처럼 난봉꾼 기질이 다분한 그는 흥얼흥얼 콧노래까지 불렀다. 술에 취해서 주정을 하다가 그냥 자리에 쓰러져 잠을 잤다.

여자나 입는 고쟁이를 사내가 입고 때 국물이 주르르 흐르는 저고리가 보일세라 ?釉?둘러 걸친 두루마기를 입은 채였다. 양 다리를 쩌억 벌리고 코를 드르렁 드르렁 거리며 자는 품세를 사돈 내외는 물론 이웃들과 친척들이 보고서 배꼽을 잡고 웃었다.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시집 온 새색시는 방 안에서 음전하게 앉아만 있었다.

그는 많이 마신 술 탓에 열이 났는지 답답한 고쟁이 바지를 집어 던지고 아랫도리는 알몸인 채로 잠을 잤다. 한참 자다가 갈증을 느낀 그는 아랫도리를 홀랑 벗은 채로 부엌에서 냉수를 한 바가지 떠먹고는 취중에 더듬더듬 들어간 곳이 다름 아닌 안사돈과 이웃 아낙네들이 자고 있는 방이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난 아낙네들은 어느 사내가 아랫도리를 벗은 채 옆에서 코를 드르렁대고 자고 있으니 소스라쳐 놀라기도 하고 얼굴을 붉히고 힐끗힐끗 아래를 쳐다보는 아낙네들도 있었으니.

"하이고, 저 고쟁이 술꾼 백문선이의 꼬락서니 좀 보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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