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를 통해 본 한·일 관계
축구를 통해 본 한·일 관계
  • 충청타임즈
  • 승인 2010.06.30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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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오창근 <도담학원·칼럼니스트>

일본과 파라과이의 월드컵 16강 경기를 지켜보았다. 결과는 지루한 무승부 끝에 승부차기로 일본이 아깝게 지고 말았다. 아시아의 자존심을 위해 일본의 승리를 기원한다는 조중연 대한축구협회 회장의 발언과 이번 기회에 아시아 맹주의 자리에 올라서 그동안 한국축구에 가려 2인자 역할을 할 수밖에 없었던 오욕의 역사를 말끔히 지우려는 일본 축구팬들의 바람도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8강 문턱에서 우루과이에 패하고 귀국하는 선수단을 보며 일본이라도 8강에 진출해서 아시아의 자존심을 지켜주는 것이 낫다는 생각을 하지만, 한편으론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말처럼 일본이 우리보다 나은 성적을 거둘까 봐 약간의 시기와 질투심도 은근히 바탕에 깔렸다.

머리로 생각하면 그래도 가까운 일본이 승리하기를 응원해야 하는 것이 도리인데 마음은 전혀 그렇지 못한 것을 우리 국민이면 어느 정도 공감했을 것이다.

라이벌(rival)의 어원은 라틴어 강(江)을 뜻하는 리부스(rivus)와 강물을 함께 사용하는 주민을 일컫는 리발리스(rivalis)라는 말에서 나왔다. 강을 맞대고 살면서 친한 이웃도 되지만, 가뭄이 들거나 어떠한 이해관계가 대립될 때는 싸움을 할 수밖에 없는 숙명적인 관계가 라이벌이라는 뜻이다. 라이벌(rival)은 적(enemy)과는 다른 의미다.

적은 그저 섬멸의 대상이지만 라이벌은 때론 대립하지만, 공통의 이익에 대해서는 협력하는 공존공생의 대상이다.

한·일 양국의 축구가 서로에게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자극제가 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대놓고 응원하기에는 양국이 겪었던 쓰라린 역사의 기억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한·일처럼 라이벌 관계인 나라를 살펴보니 포클랜드 전쟁을 벌인 영국과 아르헨티나, 그리고 세계 2차 대전을 통해 막대한 피해를 준 독일과 프랑스 등 과거의 아픈 역사가 스포츠라는 매개를 통해 부활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축구경기 결과에 따른 외신보도 형태도 이와 비슷한 측면이 많다. 일본과 중국은 우리나라의 선전에 대해 칭찬과 더불어 은근한 부러움과 시기를 함께 포함하고 있어 양국의 네티즌들 반응을 뜨겁게 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일본의 16강전을 앞두고 맥스무비(www.maxmovie.com)에서 어느 나라를 응원할 것인가 라는 설문조사에서 '파라과이를 응원 하겠다'라는 의견이 65.5%(1833명), '일본을 응원하겠다.'라는 의견은 15.8%(441명)로 나타났다. 결과를 놓고 보면 양국 사이에 가로막혀 있는 감정의 앙금이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대물림에서 남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국가대표 간의 첫 한일전은 1954년 제5회 스위스 월드컵 예선전이었다. 이 경기에서 한국은 일본에 5-1 크게 승리하였고, 여기서부터 한국과 일본의 기나긴 축구전쟁은 시작되었다.

이승만 대통령이 경기하러 일본으로 떠나는 대표팀에게 "경기에서 패하면 대한해협에 몸을 던져라."라는 말을 남긴 유명한 일화가 말해주듯 한일전은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의식을 온 국민이 가지고 있다.

화끈하게 일본의 승리를 바란다는 덕담을 건넬 수 없는 이유 중의 하나가 잊을 만하면 터져 나오는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과 일본 보수 인사들의 망언도 한몫을 하고 있다.

이렇듯 이해관계가 얽혀 있고 지나간 역사의 굴레가 아직도 심리적 거리를 두게 하고 있다.

구(舊) 소련의 비밀문서 공개로 6.25남침이 공공연한 사실로 드러났음에도 아직도 시원스럽게 남침을 인정하지 않는 중국의 태도나 식민 지배를 통해 한국의 근대화가 시작됐다는 망언을 일삼는 이웃을 기꺼운 맘으로 성원하기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강물이 말라붙으면 언제든 적의(敵意)를 드러낼 수밖에 없는 '불편한 관계'를 이번 축구 경기를 통해 다시금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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