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융조 교수와 떠나는 역사문화탐방 ④
이융조 교수와 떠나는 역사문화탐방 ④
  • 연지민 기자
  • 승인 2010.06.29 21: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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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양 금굴 < 충북도 기념물 102호 1994년 12월 30일 지정 >
단양 금굴 탐방에 참가한 어린이들이 이융조 교수의 안내에 따라 입구로 들어서고 있다.
눈길 닿는 곳 마다'베일벗는 타임캡슐'

확인된 동굴 길이 85m… 신석기~청동기 걸친 선사문화 연구 단초 체공


충청타임즈가 주관하고 청주문화원·충청북도·한국선사문화연구원이 함께한 대충청방문의 해 기념 역사탐방이 26일 단양에서 진행됐다. '이융조교수와 떠나는 선사유적' 두 번째 프로그램으로는 구석기인들의 터전이었던 단양 동굴유적지 구낭굴과 금굴을 탐방했다. 단양의 동굴유적지는 수양개유적지와 더불어 단양 구석기 문화를 가장 잘 드러내는 곳으로 한국 선사문화를 연구하는 데 획기적인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

단양 구낭굴에서 20여분 거리에는 금굴이 있다. 도담삼봉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진 남한강을 배경으로 산 중턱에 위치한 금굴은 넓은 입구부터가 구석기인들의 모습을 유추하게 만든다.

몇년전만 해도 배를 타고 강을 건너야만 만날 수 있었던 금굴이지만 현재 굴 앞으로는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 공사가 한창이다.

산의 품에 들듯 다리를 건너면 너른 강가에 수천, 수억년 시간을 품은 금굴이 모습을 드러낸다.

과거로의 여행 때문일까, 뻥 뚫린 동굴 입구가 마치 공룡의 커다란 입처럼 느껴져 몸을 움츠러들게 했다. 하지만 시원하게 뿜어져 나오는 동굴의 기운은 끈적한 초여름 더위를 잊게 했다.

일년내내 15도의 온도를 유지한다는 금굴은 구석기인들에게 더운 여름이나, 추운 겨울에도 안온한 삶터가 되어주었던 것이다.

단양 금굴은 우리나라 구석기 문화층이 약 70만년 전부터 있던 것으로 추정되는 유적이 출토되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시원문화(始原文化)임을 보여주는 곳이다.

금굴은 충주댐 수몰지역 조사(1983~85)로 연세대학교 손보기 교수팀이 발굴했다. 이곳은 3차례 발굴조사를 통해 구석기시대부터 청동기시대까지 여러 시기에 걸친 문화가 형성되었음이 밝혀졌다.

동굴 앞으로는 지금도 많은 물이 흐르는 남한강이 도도하게 흐르고 있어 구석기인들에게는 살기 좋은 삶터임을 확인할 수 있다. 동굴 규모는 입구 높이 8m, 너비 7~10m이며 확인된 동굴의 길이는 85m이다. 특히 동굴 안쪽에 곁굴이 있어 구석기인들이 이곳에서 생활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융조 교수는 "신석기와 청동기 등 선사시대 문화층이 차례로 모두 나타나는 드문 구석기 동굴"이라며 "출토 유물도 석기와 뼈유물, 토기, 치레걸이 등 선사시대 자료들이 종합적으로 출토되어 한국 선사문화의 표준유적으로서, 당시 사람들이 여러 시기에 걸쳐 고루 살았던 흔적이 잘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 선조의 삶 눈앞에 '감탄사' 연발

이경숙씨 역사탐방기

밤새 설레는 맘과 비가 내린다는 예보에 마음이 허공 중에서 널을 뛰어 어찌 잠이 들었는지도 모를 아침이 왔다.

빗방울이 떨어지는 이른 아침, 두 번째 단양 나들이 채비를 했다. 청주문화원에서 오전 8시 30분에 출발을 한다기에,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는 효진(12·매봉초5)과 경민(7·유치원)을 깨워 7시도 안 된 시간에 대전에서 출발했다.

차에 오르고 보니 지난번에 보았던 낯익은 가족들이 많았다. 이융조 교수님도 함께 탑승을 하셔서 단양 나들이길에 수양개의 역사와 유물을 다시금 설명해 주셨다.

이융조 교수님과 처음 답사한 곳은 가곡면 여천리에 있는 구낭굴. 올라가면서 5번을 놀랐다.

우선 구낭굴을 찾아가는 먼 길과 깨끗하게 보존된 자연, 잘 보존된 동굴, 구석기인부터 발굴된 시점까지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는 점과 발굴을 위해 몇백 번을 오르내렸을 연구원들 노고까지 모두 놀라울 뿐이었다.

구낭굴은 굴 입구부터 평지형태로 걸어서 들어간다. 이런 굴을 수평굴이라고 부른다. 굴 내부에선 사슴뼈와 석회마루(3개의 층을 이룸)도 보았다. 굴 외부에선 입구로 추정되는 구멍도 몇 개 보았다. '혹 쌍굴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가지신다고 교수님의 말씀에 그럴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구낭굴 바로 아래엔 또다른 굴의 입구가 있었다. 그곳은 수직으로 내려가는 마치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가 그곳으로 빠져들어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도담삼봉을 끼고 금굴을 찾았다. 남한강에는 다리공사가 한창이다. 공사 전에는 금굴을 가기 위해선 배를 타고 가야 한다고 했는데, 다리공사로 걸어서 갈 수가 있었다. 배를 탔으면 더 운치가 있을 텐데 약간 아쉬웠다.

강가 풀숲을 헤치고 오르니 큰 굴이 나왔다. 구낭굴보다 환하고 넓었지만 동굴 안은 무척 어두웠다. 옆에 있는 사람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그 옛날 사람들은 횃불도 없었을 텐데 어떻게 이런 굴 속에서 살았을까 그래서 일까 입구에서 가까운 곳에 터널 속의 비상대처럼 작은 굴이 또 보였다. 곁굴이란다. 곁굴의 특징은 환하게 지낼 수도 있고, 너무 춥지도 덥지도 않은 곳에서 생활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 큰 입구의 장점을 살려 강 건너에 있는 사슴과 같은 동물들을 사냥하여 먹었다는 옛 선조들의 삶을 두 눈 감고 잠시나마 느껴 보았다.

이번 여행에서 느낀 것은 눈으로 보고 굴이라고만 느꼈던 것들에도 모두 다 다른 의미가 있었다는 것과 아주 오래전 글을 모르던 시절부터 천문에도 관심이 있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 땅에 태어난 것이 아주 고맙고 그리고 그런 고마움을 배우고 느낄 수 있게 도와주신 이 교수님과 충청타임즈에 감사한 마음이 가득하다. 가슴 뿌듯한 단양 나들이였다.
구석기시대부터 청동기시대까지 여러 시기에 걸친 문화가 형성된 단양 금굴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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