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단체장, 제왕적 군림 종식"
"자치단체장, 제왕적 군림 종식"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0.06.28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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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 당선자의 공(公)과 사(私) 김영만 옥천군수
"무엇보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제왕적 자치단체장에서 탈피해 유권자인 주민들이 주인인 행정을 펴는 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김영만 옥천군수 당선자는 "각 분야별 민원과 제안들을 적극 수렴하고 실과장뿐 아니라 실무자까지 배석한 가운데 이를 논의하고 협의해 적절한 해법을 창출하겠다"고 밝히고 "개인적으로 받는 민원과 청탁도 가능한 한 이런 공적인 시스템을 통해 해결하겠다"고 덧붙였다.

투명한 인사행정을 위해서는 "다양한 인물이 참여하는 인사위원회를 구성하고 객관적인 다면평가가 이뤄지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선거기간 내내 구호로 내건 '10만 자족도시 옥천'에 대해서는 "국회 행정개혁특위 법안이 6월 본회의를 통과하면 본격적으로 지방행정구역 개편이 추진되는 만큼 옥천이 인구 10만 정도의 자족도시가 돼야 통합이 되더라도 중심에 설 수 있다는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주택난 해소를 위해 읍사무소 유휴지와 군유지 등에 2013년까지 80억원을 투입해 군립임대주택이나 공공주택을 건립하겠다"고 말하고 "2013년까지 대도시 일류강사가 초빙돼 지역 학생들을 가르치는 기숙형 종합교육회관을 준공해 교육명품 군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용도를 찾지 못해 지역의 혹이 되고 있는 군수 관사에 대해서는 "현재 살고 있는 자택이 편하다"며 "관사에는 입주하지 않고 지역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주민들을 위한 공용시설로 활용하겠다"고 말했다.

김 당선자는 옥천군에 최대한 간략한 취임식 준비를 요청, 당초 400만원의 예산을 들여 가지려던 취임식 행사가 30만원대 행사로 대폭 줄었다.

◈ 정치 입문 30년만에 '한풀이'

소속정당 현직군수 구속 대타 출전

깨끗한 이미지 어필… 55.69% 압승

정치에 입문한 지 30년 만에 기록한 첫 승이었다. 김영만 옥천군수 당선자(58)의 정치 역정은 그만큼 가시밭길이었다.

대전에서 학원을 경영하던 그는 만29세 때인 81년 사회당 후보로 국회의원에 출마했다 낙선했다.

이후 박준병 국회의원 보좌관을 지내다 4급 행정직 공채시험에 합격해 충북도 전문위원을 역임했다.

2002년 전문위원을 사퇴하고 고향에서 정치활동을 재개한 그는 그해 옥천군수 선거에 출마, 3선을 노리던 현역 군수와 격돌한다.

결과는 1600여 표 차 석패. 옥천읍에서 이기고도 면 지역에서 뒤져 분루를 삼켜야 했다.

4년 후 2006년에는 한나라당 공천 경선에서조차 밀려나는 수모를 겪었다. 탈당 후 무소속으로 도의원에 출마했지만 패배로 끝났다.

이번 선거에서는 자유선진당 공천을 받아 도의원에 재도전했으나 뜻밖의 사태를 맞는다. 같은 당 소속 현직 군수가 구속되며 대타 출장 당명이 떨어진 것. 당선이 유력한 도의원 출마를 접고 전망이 불투명해진 군수 출마로 선회해야 하는 처지가 되자 측근에서는 "이렇게도 관운이 없느냐"는 탄식이 터졌다.

그러나 그는 '김영만의 땀과 눈물이 옥천의 노래와 희망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처절한 호소로 민심을 파고들었다.

오랫동안 정치에 몸담으면서도 구설에 한 번 오르지 않은 깨끗한 이미지로 소속정당에 쏟아지는 비방을 극복했다.

이번에는 한 번 기회를 줘야하지 않겠느냐는 동정론에, 재력이 없는 그를 위한 후원회가 조직돼 며칠 만에 후원금 한도액인 6100만원을 채운 점도 그에게 힘이 됐다.

그는 결국 득표율 55.69%의 압승으로 30년 맺혀온 한을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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