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질 세계 100대 도시 진입"
"삶의 질 세계 100대 도시 진입"
  • 이재경 기자
  • 승인 2010.06.28 22: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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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 당선자의 공(公)과 사(私) 성무용 천안시장
초심으로 돌아가 발전 노력
모든 시민 잘사는 도시 건설
공약실현 3대프로젝트 마련

3선 고지 등정에 성공한 성무용 천안시장(66·한나라당)의 첫 일성은 '초심(初心)'이었다. 그는 지난 3일 새벽, 당선 확정 후 선거사무소에서 500여 지지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초심으로 돌아가 천안발전을 위해 더욱 혼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지난 선거에서 내건 그의 핵심 공약은 천안을 '삶의 질 세계 100대 도시 반열에 올려놓겠다'는 것. 앞으로 4년 임기 동안 어떻게 천안시정을 꾸려갈지 들어 봤다.

그는 지난 선거에서 뜻밖의 '거창한' 공약을 들고 나왔다. '삶의 질 세계 100대 도시 진입'을 선정한 배경을 물어 봤다.

"우리 천안은 이제 어느 정도 도시 인프라를 갖춘 중견도시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시민들의 삶의 질에 포커스를 맞추지 않은 개발 일변도의 정책은 실패하기 쉽다. 천안시민이 모두 잘사는, 자녀 양육과 교육, 안전문제와 일자리 때문에 고민이 없는 도시의 건설이야말로 앞으로 천안시가 안고 가야 할 가장 큰 과제다."

성 시장은 이를 위해 테스크포스팀을 구성할 계획이다. 머릿속엔 벌써 밑그림이 그려져 있다.

이 공약의 실현을 위해 3대 프로젝트를 마련했다. 첫째는 일자리 넘치는 활력 도시 만들기다. 앞으로 우량기업 1000개 유치, 산업단지 1300만㎡ 조성, 일자리 4만개 창출로 활력 넘치는 자립·자족도시를 만들겠다는 포부다.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그는 "수도권의 비대화는 곧 충남지역 인접 도시에 기회가 될 것"이라며 "천안을 권역별로 나눠 효율적으로 개발해 전국 어디에서나 사람들이 살고 싶어 이사 오는 곳으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국제비즈니스파크 조성사업, 원도심 복합테마파크, 천안 경전철, 천안~청주간 전철 사업 등의 추진으로 인프라가 갖춰지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둘째가 안전·건강·쾌적도시 천안 만들기다. WHO 국제안전도시 재공인과 국제건강도시 인증을 추진할 계획이다. 특히 쾌적한 도시환경 조성을 위해 그린카펫 조성사업에 힘을 쏟을 예정이다. 도시 녹지공간 조성을 위한 500만 그루 나무심기, 명품 가로수길 조성사업도 추진한다.

셋째는 교육·복지·문화가 충만한 만족도시 천안 만들기. 저소득층과 장애인, 노인, 모자가정 등 사회적 배려가 필요한 약자들을 위한 맞춤형 복지시스템을 가동한다는 방침이다. 특히 자녀 양육과 교육에 부담을 느끼지 않는 도시를 만들기 위해 특단의 대책 마련에 나설 계획이다. 부수 공약으로 내건 영어마을 건립에 힘을 쏟을 계획이다. 그는 "적당한 부지를 물색 중이며 특정 부유층 자녀의 전유물이 아닌, 천안지역 학생이면 누구나 배울 수 있는 공공성을 띤 교육의 장으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 '인화·배려' 가장 큰 경쟁력

중·고시절 정구부 주장 맡으며 리더십 키워
타고난 친화력 … 전두환시절 무소속 금배지


성 시장의 가장 큰 경쟁력은 '인화와 배려'다. 사람들과 어울리기 좋아하고 진심으로 대한다. 남을 돕고 싶어하는 천성이 그의 오늘을 있게 했는지도 모른다.

어릴 적 일화 한 토막. 1950년대 말, 중학시절 기차를 타고 주말에 집에 내려오다 기차에서 만난 스님이 그에게 천안 성불사로의 길 안내를 부탁했다. 시내버스가 없던 시절, 밤 10시에 도착한 천안역에서 걸어서 두어 시간 거리인 절에 데려다 달라는 것이었다. 잠시 머뭇거린 소년은 '내 고향에 온 손님인데 (안내가) 당연하다'는 생각에 절까지 스님을 모셨다. 집에 돌아오니 새벽 5시, 집에선 새벽까지 아들이 들어오지 않자 난리가 났다.

학창시절엔 수재였다. 사업을 하던 부친 슬하에서 엄격한 교육을 받은 그는 천안남산초를 졸업한 뒤 서울 용산중학교로 유학길에 올랐다. 당시 용산중 근처는 미군 기지촌이 있어 교육환경이 별로 좋지 않았던 곳. 부친은 그를 학교에서 1시간 이상 거리인 먼 곳에 하숙집을 정해주고 '한눈팔지 말 것'을 단단히 다짐받는다.

그는 "학업에 소홀히 하지 말라는 아버님의 배려에 매우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후 용산고를 거쳐 연세대 상과대학을 졸업했다. 운동에도 특출났다. 중고교시절 정구부 주장으로 전국대회를 섭렵했다. 이때 리더십과 체력을 선물 받았다.

ROTC장교(3기)로 군 복무를 마친 그는 서울에서 직장생활 후 부친의 가업을 잇기 위해 고향으로 내려왔다. 타고난 친화력과 리더십으로 동천안JC회장, 충남야구협회장 등을 맡으며 왕성한 사회활동을 했다. 주위에서 국회의원 출마 권유를 받고 고심 끝에 서슬 퍼렇던 전두환정권 시절 무소속으로 출마,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다. 이어 재선에 도전했으나 지역 바람에 밀려 낙마하는 시련도 겪었다. 그러나 좌절하지 않았다. 10·11·12대 천안상공회의소회장을 연임하며 2002년 지방선거에 출마, 천안시장에 당선되면서 행정가로 변신했다. 그리고 3선에 성공, 1일 취임식을 앞두고 있다. 그는 "정도(正道)의 외길을 걸어온 신념이 오늘의 저를 있게 했다"며 "초심으로 돌아가 더 낮은 자세로 지역발전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을 맺었다.

1943년생. 부인 최무자씨(64)와의 사이에 1남1녀를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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