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견된 F-5 전투기 조종사들의 죽음
예견된 F-5 전투기 조종사들의 죽음
  • 이재경 기자
  • 승인 2010.06.22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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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이재경 부국장 (천안)

또 어처구니없고 황당한 죽음이다. 고(故) 박정우 대령(42·공사 39기)과 정성웅 대위(28·사관후보생 118기). 공군 제18 전투비행단 소속인 이들은 지난 18일 오전 비행훈련 후 착륙 도중 전투기가 바다로 추락하면서 불귀의 객이 됐다. 아내와 1남1녀의 자녀를 둔 한 가장이, 미혼으로 부모님과 여동생을 둔 촉망받던 젊은 독수리가 끝내 가족들의 품에 돌아오지 못한 채 산화했다.

국방부가 의례적으로 1계급 승진을 추서하고 유족들을 위로했지만, 영결식장에 쏟아진 오열은 분노로 이어지고 있다.

두 조종사의 죽음은 예견돼 있었다. 전투기에는 비상 탈출 장치가 있어 최후의 순간에 조종사들의 구명을 돕는다. 이번 사고에서 조종사들은 비상 탈출을 시도하고도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두 명 모두 사출(射出) 좌석에서 솟구쳐 낙하산을 펼쳤으나 무위에 그쳤다. 박 대령은 헬멧을 쓰고 낙하산을 맨 채, 정 대위는 낙하산 줄에 얽힌 채 낙하산에 덮인 상태로 발견됐다.

군에 따르면 사고 당시 전투기는 F-5 이글 전투기로 사출 좌석이 구형이다. 구형 사출 좌석은 고도 600m 이상에서 정상 작동되며 사고 당시 이들의 비행 고도는 150~200m에 불과했다. 군 소식통은 이와 관련 "사출 좌석이 작동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혀 두 조종사의 직접적인 사망 원인이 기체 결함보다 비상탈출 장치의 결함에 기인했음을 시사했다.

어이없는 것은 이 구형 사출 좌석이 교체할 수 있는 품목이라는 점이다. 국내 F-5 전투기는 모두 170대로 한국이 보유한 전체 전투기 비율의 35%를 차지한다. 이 전투기에는 모두 구형 사출 좌석이 장착돼 있다. 이 전투기를 타고 만약의 사고를 당해 비상탈출을 시도하려 해도 고도 600m 이하에서는 살아남기 어렵다. 실제 지난 2000년 이후 이번까지 8차례 F-5 전투기 추락사고가 발생해 13명이 숨졌는데 단 한 차례를 제외하곤 모두 조종사가 살아남지 못했다.

그러나 신형 사출 좌석이 장착된 F-16 전투기의 경우 2000년 이후 지금까지 7차례의 추락 사고에서 단 한 번을 제외하곤 모두 조종사가 생환했다. 신형 좌석은 고도가 제로인 상태에서도 사출 작동돼 낙하산을 펴고 탈출하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외국의 사례를 보면, 가까운 대만과 터키는 이미 보유 중인 F-5 전투기에 모두 신형 사출 좌석을 장착했다. 물론 조종사들의 안전을 위해서다. 신형 좌석의 가격은 개당 1억5000만원에서 2억원 정도. F-5 전투기 가격이 대당 100억원(신형 초기 구입비용)이니, 승용차로 치자면 우리는 그랜저 차량에 안전벨트나 에어백을 장착하지 않아 어이없는 대형사고를 당하고 있다.

전투기 추락사고는 물적 손실로만 계산할 수 없다. 우리 군의 조종사 양성 비용은 대략 10년 차 장교의 경우 50~120여억원이 든다고 한다.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군의 주축 전력인 조종사를 양성하고도 비행기 값의 2%도 안 되는 좌석 교체 비용을 아끼려다 더 큰 손실을 보고 있는 셈이다. 이런 상황이니 조종사들은 늘 불안하다.

전투와 작전에 맡겨야 할 귀중한 목숨이 황당하게 안전사고에 불안하게 노출돼 있다. 올해 우리나라의 국방 예산은 모두 29조6000억원. 문제가 된 구형 사출좌석을 교체하는 데 드는 비용은 300억원에 불과하다. 전체 국방 예산의 0.1%만 쓰면 되는데 이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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