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의 한가로운 '바람론'
청와대의 한가로운 '바람론'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0.06.07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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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편집부국장

"바람을 쫓아다닐 수는 없지 않은가". 청와대 한 고위 관계자가 이번 지방선거 결과에 대한 청와대의 대응책을 함축적으로 밝힌 한마디다. 그는 "민심은 한쪽으로 쏠렸다고 생각하면 균형을 잡아주는 것"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따라서 야당으로 정치 파워가 집중되면 민심은 다시 한나라당을 지지해 균형을 잡아줄 것이라는 분석이다. 자신들이 열세가 됐으니 어차피 방향이 달라질 바람을 따라다니며 호들갑 떨 일은 아니라는 얘기다.

결국 청와대는 인적쇄신이나 정책변화 등을 통해 선거에서 나타난 민심에 호응할 의도가 없다는 결론을 내린 모양이다. 유권자가 거대여당의 존재를 견제했을 뿐이라는 '바람이론'만으로 선거결과를 분석한 청와대의 인식은 놀라울 뿐이다.

여당이 상징적 승부처인 서울에서 승리하고도 '변명의 여지없는 완패'를 자인한 것은 사실 그 내용이 나빠서다. 오세훈 서울시장도 '사실상의 패배'라며 승리를 부끄러워했지만 민주당 한명숙 후보에게 2만6412표 차로 구차한 승리를 챙겼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는 대한민국의 '베버리 힐즈'인 강남의 3개 구에서 한 후보를 12만6000여표나 앞서며 다른 구에서 뒤진 10만표를 일거에 만회하고 승리했다. 지난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들이 석권했던 서울시 25개 구청 가운데 21곳이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에 접수됐지만, 강남의 3개 구는 한나라당 후보들을 사수하며 지조를 보였다. 강남이 아니었으면 서울시는 그야말로 민주당 천하가 됐을 것이다. 강남의 부촌만이 확고한 지지기반임이 확인된 현실 앞에서 오 시장은 패자를 자인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어 주목할 대목은 지방정치의 근간인 기초단체장과 지방의원 선거에서도 한나라당이 완패한 것이다. 한나라당은 수도권 2곳의 광역단체장 선거에서는 이겼지만 서울시의회를 비롯해 경기도, 인천시의 광역의회는 모두 여소야대로 역전됐다. 지방에서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충북의 경우에도 도지사는 물론 2대 도시인 청주시와 충주시의 한나라당 현역 단체장이 민주당 후보에 고배를 마셨고 도의회도 민주당 우위로 역전됐다. 동네일꾼을 뽑는 논두렁 선거까지도 완패해 놓고 '민심은 바람'이라는 한가로운 풍월을 읊는 모습은 일견 애처롭기까지 하다.

정당 공천이 없었던 교육감 선거에서 진보 성향 후보들이 대거 당선된 점도 청와대의 안일한 해석을 부정하게 만든다. 서울과 경기도, 전통적 보수지역인 강원도에서도 현 교육정책에 비판적인 진보적 후보들이 당선됐다. 선거결과를 여당에 대한 견제가 아니라 일방적 국정운영에 대한 견제라고 봐야 하는 대목이다.

그런데도 유권자들의 견제심리가 최대 패인이고, 불가항력으로 몰아친 바람에 대해 누군가에게 책임을 묻기도 어려운 것 아니냐는 것이 청와대의 판단인 모양이다. 그렇다면 책임져야 할 사람들은 명백해진다. 바로 청와대 참모들이다. 민심의 반전을 전혀 예측하지 못하고 있다가 완패를 당하고도 유권자들을 본능적으로 약자를 편드는 비이성적 판단의 소유자로 격하하는 사람들 말이다.

그들 논리라면 한나라당 재집권을 위한 답은 나와 있다. 다음 총선에서도 야당에 화끈하게 완패하는 것이다. 다음 대통령 선거에서 유권자들은 야당으로 완전히 기울어진 정치적 불균형을 확실하게 바로 잡아줄 것이기 때문이다.

유권자들은 편향된 정치지형을 견제한 것이 아니라 일방적 우위를 앞세워 독주와 전횡을 일삼는 정권의 오만을 견제한 것이다. 청와대 인식이 바뀌지 않으면 이번 바람은 다음 선거에선 태풍이, 그다음 선거에서는 쓰나미가 돼서 한나라당을 덮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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