셔터 아일랜드
셔터 아일랜드
  • 충청타임즈
  • 승인 2010.03.28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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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강대헌<충북인터넷고교사>
너무 심각해서 어떤 종류의 웃음조차도 웃을 수 없었던 영화 마틴 스콜세지(Martin Scorsese)의 '셔터 아일랜드(Shutter Island, 2010)'에 대한 일반적인 분류는 미스터리와 스릴러이다.

그런데 그 영화를 고도로 정제된 소셔드라마(sociodrama)로 바라보면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프랑스의 음악가 가브리엘 우르뱅 포레(Gabriel Urbain Faur, 1845~1924)의 가곡 '꿈꾸고 난 후(Apres un reve)'를 첼로 연주로 들으면 기분이 달라지듯, 어쩌면 그 영화를 보고 난 뒤의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불편해진 마음과 감정을 위무(慰撫)할 수도 있을 것이다.

"보스턴 셔터아일랜드의 정신병원에서 환자가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연방보안관 테디 다니엘스는 수사를 위해 동료 척과 함께 셔터아일랜드로 향한다. 셔터아일랜드에 위치한 이 병원은 중범죄를 저지른 정신병자를 격리하는 병동으로 탈출 자체가 불가능하다. 하지만 자식 셋을 죽인 혐의를 받고 있는 여인이 이상한 쪽지만을 남긴 채 감쪽같이 사라지고" 중요한 건 줄거리가 아니었다.

영화를 보면서, 사람들이 언제 괴물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당신은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TSD)'가 사람을 괴물로 만드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간단히 '트라우마(Trauma)'라고도 불리는 이것은 그리스어로 '상처(傷處)'의 뜻을 지닌 말에서 나왔다고 한다. 그렇다. 자신의 상처를 온전히 치유(治癒) 받지 못한 사람은 몹쓸 충격을 끝없이 재경험하는 악순환의 고리에 갇혀 고통을 받다가 누구도 통제할 수 없는 괴물처럼 되고 만다.

영화 말미(末尾)에서 테디 다니엘스는 "당신은 선량한 사람으로 지금 죽을 것인가, 아니면 괴물로 오래 살아남을 것인가"라는 참으로 곤혹스러운 질문을 하고는 뒷모습의 여운을 길게 남기면서 사라졌다. 그는 자신의 잘못을 받아들이지 못해 혹독하게 자학(自虐)하다가 정신분열로 끝장을 보고 만 가련한 사람이었다.

랭보(Rimbaud)와 베를렌(Verlaine)이 '시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격론을 벌였는데, 그때 랭보가 상징주의 시단의 거장이던 베를렌에게 "당신은 시를 어떻게 쓰는지를 알지만, 나는 시를 왜 쓰는지를 안다"라고 말했다고 영화 '토탈 이클립스(Total Eclipse, 1995)'에선 그렸다. 이유를 안다는 것은 의미의 관문을 당당히 통과했다는 것이다. 방법론(方法論)보다는 의미론(意味論)이 알차야만 실의(失意)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

랭보의 시구처럼 "상처 없는 영혼이 어디 있으랴." 그러나 삶의 이유를 알고 사는 사람은 "당신은 왜 사느냐"라는 물음에 그리 당혹해 하지 않고, 오히려 단단하게 아문 상흔(傷痕)을 보여주면서 빙그레 웃고 만다.

무엇이 해탈(解脫)인가 법정스님은 '오두막 편지'에서 "내 소망은 단순하게 사는 일이다.

그리고 평범하게 사는 일이다. 느낌과 의지대로 자연스럽게 살고 싶다. 그 누구도, 내 삶을 대신해서 살아줄 수 없다. 나는 나답게 살고 싶다"라고 썼다. 교만하지도 않게, 또한 비굴하지도 않게 자신의 모습대로 순응(順應)하면서 살아갈 수 있으면 좋으련만.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연민(憐憫)의 눈빛으로 자신과 타인을 바라보는 사람들이여. 다시 기운을 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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