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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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청타임즈
  • 승인 2010.03.25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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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오창근 <E.M.S 학원 중등 원장>

말빚도 남기지 않고 가신다는 법정 스님의 유언 때문에 서점에서는 스님의 책이 품귀현상을 빚고 있다. 청청하게 사신 스님의 삶이 정갈한 명주실처럼 뽑아져 사바 중생에게 큰 깨우침을 준다. 이런 글들이 무슨 업이 되고 허물이 될까마는 스님은 그조차 구차한 짐으로 여기신 것이다.

새는 마지막 울음이 가장 슬프고, 사람은 마지막 남기는 말이 가장 선하다고 한다. 남을 의식하고 관계를 살펴 하는 말이 아니라, 인생의 뒤안길에서 지나온 삶을 돌이키며 하는 걱정과 당부의 말이기에 진실한 것이다.입 안에 노잣돈 몇닢 넣고 가는 것이 우리의 삶이고 보면 살아서 남에게 모진 말과 잔인한 행동으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고 아귀처럼 군 삶이 어찌 회한으로 남지 않겠는가?
몇 년 전에 유언장을 미리 작성하자는 운동이 진행된 적이 있다. 더 나아가 관에 몸을 누여 보는 임사(臨死)체험을 통해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인간이 욕심이 아무리 크더라도 작은 면적의 관조차 채울 수 없음을 깨달아, 주어진 생명을 값있게 쓰고, 많이 베풀고 사는 삶의 중요성을 깨우치는 운동이다.

현재 우리 사회는 높은 지위와 남부럽지 않은 부를 얻기 위해선 어떠한 편법도 할 수 있다는 도덕적 해이가 팽배해 있다. 정당한 노력의 결과로 이룬 부를 탓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여러 가지 편법들을 동원해 자기의 이윤만 챙기고, 그것이 경쟁의 정당한 결과인 양 당연시하는 풍토는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이 진급을 위해 뇌물을 주고받고, 편법을 통해서라도 자식을 좋은 학교에 진학시키려는 부모들, 그리고 자신의 성욕을 채우기 위해 어린 학생을 제물로 삼는 몰지각한 어른들. 이 모두가 자신의 삶을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고 남을 딛고 일어서면 된다는 욕심에서 기인한다.

머리맡에 자식들 모아 놓고 마지막 무슨 말을 남기고 떠나야 할 것인가? 하는 진지한 고민을 가끔 해 본다.

돌이켜보면 이 세상에 내가 소유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수억 년 동안 존재하는 땅에 금을 긋고 이것은 내 것이라고 도장 찍고, 서류를 꾸민다 한들 영원히 소유할 수 없다. 잠시 내 것인 양 쓰다가 다시 누군가의 소유가 될 뿐이다. 빌려 쓰는 것에 불과하다.

오래전 학생들에게 유언장을 써 보게 한 일이 있다. 처음에는 장난스럽게 굴던 학생들이 점차 진지한 표정으로 구구절절 잘못한 행동과 잊고 지낸 부모님의 작은 사랑하나도 기억해 내며 고맙다고 그리고 다시 태어난다면 좋은 아들, 좋은 딸이 되겠다며 눈시울을 붉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자신의 삶을 돌이켜 유언장을 쓰는 맘을 놓지 않는다면 후회가 덜한 삶을 살 수 있다.

재산분배로 인한 다툼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쓰는 유언도 있고, 자식과 자손들에게 유훈(遺訓)으로 남기는 유언도 있다. 과거를 되짚어 미래를 생각하는 것이 유언이다. 죽음을 염두에 두는 이의 발걸음이 어찌 조심스럽지 않겠는가?

말빚도 빚이라고 하신 법정 스님과 닭 한 마리의 빚도 친구에게 부탁하고 독배를 마신 소크라테스의 빚도 아름답다. 떠나며 남긴 말이 긴 세월 빚이 아닌 빛이 되는 까닭을 우리 사회가 깊게 생각하는 날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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