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들은 불안하다
여성들은 불안하다
  • 연지민 기자
  • 승인 2010.03.15 21: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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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연지민<문화·교육부장>
또 하나의 여린 목숨이 졌다. 세상을 향해 활짝 기지개를 켜야 할 13살 어린 나이에 꽃도 피우지 못하고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며칠 동안 사회를 들끓게 했던 부산 여중생 살해사건에 전 국민은 분노했다. 성폭행 사실이 그렇고, 살해해 시체를 유기한 행태를 보며 분노했다.

그리고 붙잡힌 범인을 보며 또다시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두 차례나 성범죄를 저지르고 복역한 전과자가 버젓이 세상을 활개치고 다녔다는 사실이 분노를 금치 못하게 했다.

범인에 대한 격앙된 감정은 결국 공권력 부재에 대한 분노로 불거지고 있다. 이는 전 국민을 사회적 충격 속에 몰아 넣은 일명 '나영이 사건'이 기억에서 채 멀어지기도 전에 벌어진 이번 사건이었기에 허탈감과 분노마저 들게 한 것이다.

경찰청은 뒤늦게 김길태 사건을 계기로 재범 우려가 큰 성범죄 수배자를 하루빨리 검거하기 위해 석달 동안 특별 검거 기간을 운영한다고 밝혔다. 성범죄 수배자뿐만 아니라 살인, 강도 등 강력 범죄자와 민생침해 범죄자도 집중적으로 검거할 방침이란다. 그야말로 침소봉대요,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꼴이다.

이번 사건을 보는 여성들은 더 불안하다. 성범죄가 날로 흉악해지면서 자녀를 둔 엄마는 엄마대로, 일하는 여성들은 여성대로, 어린이는 어린이대로 세상이 무섭고 두렵다. 범죄 대상이 힘없는 여성을 타깃으로 하고 있고, 성범죄의 경우 지난해부터 13세 미만 아이를 상대로 한 범죄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으니 여성이란 이름만으로도 불안, 그 자체가 되었다.

여기에 아이들을 상습적으로 성추행한 방문학습지 교사, 경기도의 한 보육원 원장 등 지식층의 성범죄도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어 불안은 가중되고 있다. 실제 법무원이 펴낸 2009 범죄백서에 따르면 2008년 성폭력 행위를 저지른 범죄자 중 대졸 이상이 20%가 넘었다고 한다. 이같은 고학력자의 성폭력 범죄 비율은 2001년 21.6%를 기록한 이래 꾸준히 20%를 웃돌고 있으니 이 땅의 여성들은 이래저래 불안하다.

'나영이 사건'이후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에선 아동 성범죄 근절을 위한 법안을 제출했다. 성범죄자들의 범죄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전자발찌 부착이나 상습적 성범죄자에게 주기적 호르몬 주입으로 화학적 거세 치료요법 등이 포함되었다. 하지만 강력한 법안을 채택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던 정치권이었건만 정작 지금까지 채택된 법률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차일 피일 미뤄지고 있는 국회 일정에 시급한 법안마저 뒤로 밀리고 있는 셈이다. 각 당의 정치적 입지만 중요하지, 아동이나 청소년 성폭력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는 점에서 좀 더 강력하고, 근원적인 방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나 보다. 법안도, 치안도 불안해지는 상황에서 이제 누굴 믿고 길거리로 나서야 하는지 참으로 답답하다.

언젠가 TV에서 '내 자식은 내가 지킨다'며 아이 책가방에 몰래 카메라를 설치하는 일본 학부모의 모습을 방영한 적이 있다. 당시만해도 오버한다는 생각을 했지만 이젠 결코 남의 이야기로 들리지 않는다.

정부가 여성들의 불안을 잠재울 강력한 대안 찾기에 나서주길 바란다. 나영이도, 부산의 여중생도 남의 자식이 아니다. 우리의 자식이다. 제2, 제3의 피해자가 나오기 전에 좀 더 확실한 예방책이 마련되길 정말로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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