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다 기억하는 참 좋은 세상을 바라며
모두 다 기억하는 참 좋은 세상을 바라며
  • 충청타임즈
  • 승인 2010.03.01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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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자의 목소리
강연철<감곡성당보좌신부>
어디를 가나 김연아 선수에 관한 이야기는 빠지질 않습니다. 온 국민의 손에 땀을 쥐게 하였던 4분 6초! '은반의 요정'이라는 표현은 과연 김연아 선수를 위한 말 같았습니다. 은빛 얼음판 위에서 요정 같은 경기를 보여 줬던 김연아 선수를 지켜보며, 온 국민은 열광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멋진 경기를 보여줬던 김연아 선수에게 찬사를 보냅니다. 그 잠깐의 시간을 위해 김연아 선수는 얼마나 많은 땀과 눈물을 흘렸을까? 김연아 선수가 1년 동안 치르는 실제 경기의 시간은 다 합쳐봐야 고작 30분이 조금 넘는 시간이라 합니다. 그 30여분을 위해 김연아 선수는 무려 1500시간이 넘게 연습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떤 고등학교 선생님은 신학기가 시작되면 훈화 때 학생들에게 이 이야기를 꼭 들려 줘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30분을 위해 그 많은 시간을 피땀 흘려 노력하는데, 여러분은 수능시험을 치르는 하루를 위해 더 많은 시간을 쏟아 부어야 하지 않겠느냐? 꿈을 위해 더 열심히 땀을 내어라. 뭐 이런 훈화 내용일 것입니다. 공부로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 학생들인데, 김연아 선수에 관한 성공 이야기는 채찍질 당할 누군가에게는 또 하나의 부담이 될 것 같았습니다. 학생들에게 일등을 위해 더욱 달음질 하라고 채근하는 또 하나의 채찍이 될 것이 분명해 보였습니다.

인기 있는 한 코미디 프로는 최고와 1등에만 열광하는 우리 사회의 현실을 유쾌하게 꼬집고 있었습니다.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이 말이 한탄하듯이 우리 사회는 1등만을 좋아합니다. 1등 이외에 나머지는 들러리일 뿐입니다. 단편적으로 동계 올림픽의 메달집계에서도 드러납니다. 우리 나라와 유럽의 메달 집계 순위가 약간 다를 때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유럽은 메달 색깔에 관계없이 메달 숫자로 순위를 매기는 데 반해, 우리와 미국은 다른 메달의 숫자와 상관없이 금메달의 개수로 등수를 매기기 때문입니다. 은메달, 동메달을 딴 선수들 입장에서는 '금메달만 기억하는 더러운 올림픽'인 것입니다.

1등만 기억하는 현실은 올림픽뿐 아니라, 우리 교육 현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진학지도 시스템과 선생님들의 관심은 오직 서울대로만 향해 있기 때문입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청년이 자기 동생은 그 학교에 보내고 싶지 않다고 이야기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 학교는 인성교육과 박애정신을 강조하는 종교계에서 운영하는 학교였습니다. 조금 다를 것이라 생각하고 그 학교를 지원해 다녔었는데, 다른 학교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지금 종교계에서 운영하는 학교도 이럴할진데 일반 학교야 더 어떠할까.

'1등만을 기억하는 더러운 생각'은 남들만의 이야기도 아닙니다. 어느새 나의 생각 속에도 침투해 지배하고 있습니다. 성당에서 주일학교 교리교사로 봉사할 대학생들을 교구 연수에 보냈습니다. 3박4일의 연수를 마치고 돌아온 교리교사들에게 고생했다는 인사는 뒷전이고, 성적이 좋을 것 같냐는 물음이 먼저 나가고 있었습니다. 다른 성당보다 성적이 좋아야 한다, 기왕이면 1등이 나왔으면 좋겠다 말하고 있었습니다. 교리교사들은 도움 되는 좋은 것을 배워 왔노라, 다른 성당의 이런저런 좋은 것이 있었노라 말하고 있었지만, 그것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과정보다 결과에 치중하고 있는 제 모습이었습니다.

우뚝 높이 솟은 산 정상은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그 산 정상은 홀로 존재 할 수 없는 것이며, 산 전체가 함께 있을 때, 정상도 있고, 능선도 있는 것입니다. 밑에서 받쳐주는 산의 몸뚱이가 없다면, 정상의 아름다움도 절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산 정상의 아름다움도 좋지만, 능선길의 여유로움, 골짜기의 시원한 물, 가파른 오르막의 경사, 바위산의 밧줄타기 등, 산을 구성하고 있는 다른 좋은 것들도 함께 보고 기뻐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사회가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 아니라 '모두를 함께 기억하는 참 좋은 세상'이 되길 바라며, 세상 물결속에 그대로 편승하고 있는 나 스스로의 모습도 반성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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