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김없이 다 살기
남김없이 다 살기
  • 충청타임즈
  • 승인 2010.02.25 0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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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으로 읽는 세상이야기
김귀룡 <충북대학교 인문대학 철학과 교수>
학문을 연마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본인의 노력이 가장 중요한 건 두말할 나위가 없다.

본인 나름대로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공부 스케줄을 짜고 그걸 실행에 옮기는 실천 능력, 긴 기간 굴하지 않고 가야 하는 의지력 등이 요구된다. 본인의 능력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좋은 스승을 만나는 일인데, 그건 본인의 의지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라서 행운이 뒤따라야 한다.

난 다행스럽게도 좋은 스승을 만나 많은 가르침을 받았다. 선생님의 강의시간은 지옥 훈련을 방불케 할 정도로 엄격하기로 소문이 났었다. 발표문을 대충 작성해가면 어김없이 집어던지고 강의실에서 휭~하니 나가버리기 일쑤였고, 발표 내용을 조목조목 짚어 엄정하게 비판을 하셨다. 학점이 짠 것은 물론이었다. 선생님의 세미나를 위한 스터디 그룹을 결성할 정도로 학생들의 긴장감은 엄청났었다.

그 당시만 해도 학생들이 미련해서 그런지 아니면 무언가 한자라도 더 뽑아내기 위해서인지는 몰라도 선생님의 강의시간에는 학생들이 넘쳐 났었다. 나는 그걸 학문에의 열정으로 미화하면서 열심히 선생님의 강의를 들었다.

강의 내용에서도 많은 걸 배웠지만 학문에 임하는 선생님의 태도에서 더 많은 걸 배웠다. 선생님은 공부하는 일 이외에는 다 부수적인 일로 치부하고 우리에게 공부만 할 것을 요구하셨다. 선생님의 삶이 그랬기 때문에 우리에게 그걸 요구할 수 있었다.

한 번은 다음 주 발표를 맡은 학생이 선생님께 찾아가 다음 주에 약혼식이 있어서 발표를 미루어 달라고 부탁하였다.

이에 대한 선생님의 응답이 걸작이다. "약혼식을 자네 대신 다른 사람이 참석하면 안 되나"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나올 수 없는 답변이 아닐 수 없다. 선생님의 뇌리에서는 일상적인 삶의 과정에서 벌어지는 어떤 일보다 공부하는 일이 중요한 일로 각인되어 있음에 틀림이 없다.

정년퇴임 이후에도 선생님은 계속 공부하신다. 그 모습을 보면 대학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부끄러운 마음이 든다.

얼마 전 모교를 대표하는 인문학자 중 한 분으로 추천이 되어 선생님의 사색의 결과를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함께 좌담할 기회를 가진 적이 있다.

그때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면서 많은 걸 느꼈지만 가장 마음에 와 닿은 건 선생님의 삶에 군더더기가 없다는 점이었다. 선생님에게는 공부하는 일 이외에 다른 삶이 없다.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살아가는 과정에는 결혼, 출산, 자녀교육, 세속적인 성공을 위해 해야 할 일 등 수많은 일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선생님의 삶에서는 사회와 선생님의 주변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이 공부하는 일로 수렴되어 있었다. 선생님의 인생은 '삶=공부'라는 단순한 등식으로 단순화되어 있다.

이런저런 변명으로 일관하면서 해야 할 일을 계속 미루는 삶을 살아 온 내게는 아픈 가르침이다.

내 삶도 그렇고 대부분의 사람의 삶에는 너무 많은 것들이 담겨 있다. 인간관계, 출세, 건강관리, 술, 이성, 취미 생활 등등으로 인간 삶은 번잡스럽다. 어떤 한 가지 일에 매진하기 어려운 것이 인생이다. 특히 이것저것 다 걷어치우고 철학적 사색에만 몰두하는 삶을 산다는 건 더 어렵다.

한 가지 일, 특히 학문적 사색에 머리를 싸매고 매달리는 건 남김없이 다 사는 일이다. 이리저리 신경을 분산시켜 사는 삶은 다 사는 삶이 아니고 남기고 사는 일이다. 남기고 미루면서 살면 삶을 정리할 때 후회가 많이 남는다.

다 사는 삶을 살았다면 어찌 여한이 있을 수 있겠는가 이제는 미루면서 남기지 않고 다 사는 방향으로 삶을 전환하고 싶다. 그러나 세속이 주는 타성에 젖어서 살아온 삶이 하루아침에 바뀔 수 있을지 그것도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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