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과 주경야독(晝耕夜讀)
졸업과 주경야독(晝耕夜讀)
  • 남경훈 기자
  • 승인 2010.02.22 22: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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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남경훈 <편집부국장>
우리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졸업식 뒤풀이가 전국적인 이목을 집중시킨 것은 우연찮게도 청주부터였다.

본보 사진기자가 졸업시즌 스케치를 갔다가 팬티바람으로 중심가를 활보하는 중학교 졸업생들의 모습을 담아 보도가 되면서였다. 해당 학교 교장을 경고하고, 학생들이 진학한 고교까지 추적 관리()하겠다는 교육청의 대응 또한 이색적이었다. 또 잇따라 발생되는 비슷한 사태를 예방하기 위해 경찰과 교사 다수가 밤마다 동원돼 이들을 막느라고 동분서주하는 모습은 보는 이들의 혀를 차게 했다.

이후 알몸 동영상에 폭력 뒤풀이까지 나오면서 충격적인 사태로 빚어졌다.

급기야 이명박 대통령은 22일 라디오 연설에서 최근 불거진 청소년 폭력 뒤풀이에 대해 "육체적인 폭력과 성적인 모욕이 해를 거듭하면서 되물림되고 증폭되고 있는데도 아이들은 이것이 잘못인 줄 몰랐다고 한다"며 "어찌 아이들만 나무랄 수 있겠습니까, 대통령인 저부터 회초리를 맞아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스스로 회초리를 들겠다고 하니 졸업문화가 잘못되도 한참은 잘못됐다.

이맘 때쯤이면 항상 생각나는 졸업식이 있다. 거의 20년전 기자 초임시절 취재차 들렀던 한 고등학교 졸업식이다. 이 학교는 '대농 부설 양백여상'이었다.

지금은 상전벽해(桑田碧海)를 이뤄 초고층 아파트가 솟고 있지만 70~80년대만 해도 청주 시민들하면 복대동에 위치했던 대농을 잊을 수 없다. 종업원이 많을 때는 5000명이 넘었던 것을 보면 일자리창출에서는 지역에서 으뜸 기업이었던 셈이다. 섬유가 사양산업으로 자취를 감추면서 역사속의 기업으로 흘렀지만 지금 하이닉스반도체 정도는 됐을 법한 규모와 지역내 영향력을 자랑했던 곳이었다.

이 기업이 운영하는 학교가 양백여상이었다.

대부분이 중학교를 졸업하고 변변치 못한 가정 형편 때문에 전국에서 어린 청소년들이 이 학교를 찾았다. 90년 초반만 해도 전성기가 지났지만 학생수가 2000여명은 달했다.

졸업식은 아침 점심 저녁을 해결하는 다목적 강당에서 열렸다. 식장은 울음바다 그 자체였다. 떠나는 졸업생과 재학생들이 부둥켜 안고 서로 눈물을 닦아주던 모습은 지금도 생생하다. 선생님과 학부모들도 눈시울을 붉히기는 마찬가지였다. 지금은 찾기가 힘든 졸업식장의 눈물은 왠지 모르게 진한 감동을 줬다.

이들은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를 하면서 감수성이 가장 예민한 시기 결코 짧지 않은 3년을 보냈다. 섬유공장으로 작업환경도 그리 좋지 못했다. 악조건 속에서도 주경야독(晝耕夜讀)을 몸소 실천했던 청소년들이었다.

가난함에 대한 설움과 어려움을 극복해 내면서 이뤄낸 성취감에 복받친 눈물이었을 것이다.

물론 어린 여공(女工)들의 노동력 착취라는 한국 산업사의 부정적 인식도 많았다. 그러나 사연 있는 당시 졸업식은 2010년 지금의 졸업식과는 사뭇 달랐던 것만큼은 분명하다.

그때 졸업생들은 이제 40대가 됐을 듯싶다. 아마도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어머니가 돼 있을 것이다. 이들의 젊은 시절 졸업식장의 추억이 자녀들에게는 어떻게 비춰질지 궁금하다. 당시 이들은 대학에도 진학해 교장 선생님으로부터 칭찬을 받기도 했고 은행에 취업, 보다 좋은 여건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그러면서 교장 선생님이 식장에서 강조했던 점은 '졸업은 또다른 시작'이라는 것이었다.

모든 것이 끝난 것인 양 행동하는 요즘 청소년들의 졸업문화는 세대차인지 몰라도 뒷맛이 개운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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