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면함이 한국 빙상에 금메달을 안겨줬다
근면함이 한국 빙상에 금메달을 안겨줬다
  • 이재경 기자
  • 승인 2010.02.18 21: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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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이재경 부국장 <천안>
"올림픽이 뭔지 날 너무 힘들게 했어. 이날을 위해 4년 동안 피땀 흘려 힘들게 노력하고 고통스러워 포기하고 싶어도 어쩔 수 없이 꾹 참고 울고 웃었으니까"

이상화(21·한국체대)가 16일 올림픽 출전을 앞두고 자신의 미니홈피에 올린 글이다. 고통스러워 포기하고 싶어도 꾹 참고 울었다는 말에 가슴이 뭉클하다.

몇 시간 후 그는 경기장의 출발선에 들어섰다. 레디…, 땅! 총성과 함께 출발한 그는 1차 레이스에서 38명의 출전 선수 중 1위를 차지한다. 돌연 경기장 외신 기자석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아니, 이상화가 누구지. 코리아가 웬일이야. 탄성이 흘러나온다.

그런데 2차 레이스에서 돌연 순위가 바뀐다. 중국의 유력한 우승 후보인 왕베이싱이 역주를 펼친 끝에 다시 1위로 올라섰다. 긴장감 속에 마지막 주자로 다시 출발선에 선 이상화. 출발이 조금 빨랐다. 500m의 5분의 1지점인 100m 기록이 10초29. 같이 출발한 옆 라인의 볼프는 무려 10초14로 기록됐다. 이대로라면 1,2차 시기를 합쳐 볼프에게, 왕베이싱에게 금, 은메달을 다 내어 줄 상황이다. TV를 보면서 어이쿠, 가슴을 쓸어내리는 순간. 놀랄 만한 역주가 펼쳐진다. 이상화의 몸통이 빙판에 붙을 정도로 낮게 깔리며 혼신의 힘을 다해 곡선 주로를 달린다. 역주, 역주! 담담하게, 그러나 죽을 힘을 다해 빙판을 지치는 모습에 숨이 멎을 정도다. 결승선에 들어선 순간의 이상화의 기록은 37초85. 다시 대역전이다. 1차 레이스의 기록 38초24보다 0.39초나 당겼다. 하루 전 모태범의 남자부 금메달에 이어 연이틀 빙상 500m에서의 우승. 세계 최초로 올림픽에서 남녀 동반 금메달 석권 기록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육상으로 치자면 남녀 100m를 동반 석권한 셈이다.

외신들이 깜짝 놀라 이 소식을 타전하기 시작했다. AP, AFP, 로이터 등 유수의 통신사들이 '실신시킬 정도의 이변(stunning upset)', '충격적인 우승(shock victory)' 등의 표현까지 써가며 한국을 부러워했다.

17일엔 모태범이 다시 은메달 1개를 추가했다. 지금까지의 성적만 보면 빙상에서 한국이 종합 1위다. 연이은 한국의 돌풍에 로이터 통신이 분석 기사를 썼다. '근면함이 한국에 금메달을 가져다 주었다'는 것이다. 로이터는 기사에서 이상화의 말을 인용했다. 이상화는 기자에게 "특별히 다르게 한 것은 없다"며 "과거에 우리는 성공적이지 못했다. 하지만, 연습 시간을 늘릴 수는 있었다. 어떤 특별한 것도, 비밀도 없다"고 대답했다.

이상화는 16일 SBS TV와의 인터뷰에서 얼마나 훈련이 힘들었는지를 말했다. 훈련할 때 뭐가 가장 힘들었느냐는 질문에 "자전거 뒤에 무거운 타이어를 몇 개씩 매달고 끌며 달리는 것이었다"고 답했다. 그때가 가장, 입에 단내가 날 정도로 힘들었고 그때마다 때려치우고 싶었다고 솔직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 지옥 훈련의 결과가 이승훈과 모태범, 이상화의, 또 한국 빙상의 오늘을 있게 해 준 것이다.

요즘 맞는 아침이 어느 때보다 기분이 좋다. 가뜩이나 경기 불황으로 어깨가 늘어지는 판인데 모처럼 올림픽에서 우리 선수들의 선전으로 하루를 웃으며 시작한다. 교훈도 다시 새겼다. 근면함을 이길 장사는 없다. 묵묵히 자전거 뒷바퀴에 타이어를 매달아 끌며 근력과 지구력을 키우는 성실함. 우리 경제 회생의 묘방(妙方)이 꾸준한 근면함 말고는 정답이 없음을 빙상 선수들에게서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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