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과 국격(國格)
방송과 국격(國格)
  • 충청타임즈
  • 승인 2010.01.28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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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정규호 <전 언론인>
공중파와 달리 케이블 TV들은 대부분 프로그램 중간에 광고를 끼워 넣는다. 이런 프로그램 중에는 광고가 방영되는 와중에 다른 방송으로 채널이 돌아가는 것에 대비해 '60초 후에 다시 뵙겠습니다'는 등 광고에 소요되는 시간을 정확히 예고하는 경우도 있다.

공영방송인 KBS가 시청료를 받는 것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방송사들은 광고를 주요 수입원으로 하고 있음을 감안하면 케이블 TV의 이러한 고육지책은 이해할 법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고의 홍수에 지친 시청자들은 한사코 광고방송 보기를 꺼려하는 데다 리모컨으로 눈 깜빡할 사이조차 허락하지 않을 만큼 채널 점핑을 하고 있다.

게다가 최근에는 상호 소통이라는 인터렉티브(Interactive)TV가 등장함은 물론, 광고방송은 아예 제외하고 시청할 수 있는 기계적 장치까지 등장하는 세상이 됐으니 방송사와 광고주의 고민은 갈수록 깊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난 12일(현지시각) 규모 7.0의 엄청난 대지진으로 15만명가량이 숨진 아이티의 참사가 오늘로 17일가량 지나면서 이들을 후원하기 위한 국내의 모금 열기가 급격하게 식어가고 있다는 신문보도가 있다.

이 보도에 따르면 국제구호단체인 굿네이버스의 경우 아이티 참사 직후 매일 평균 1억여원이 접수되던 국민의 성금 모금액이 2주가 지나면서 하루 평균 1700여만원으로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월드비전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여서 초기 구조 활동 이후의 과제인 아이티 재건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물론 모든 고통과 슬픔, 그리고 재앙 등은 시간이 가면서 잊혀질 수밖에 없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하물며 이역만리 나라 밖의 참사에 아무리 인도적 차원의 정성을 호소한다 해도 그 온기를 오랜 동안 지속시키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그보다 더 이상한 것은 엄청난 여론형성의 힘을 지니고 있는 방송이 특별편성을 하면서까지 지진 참사 아이티 돕기 성금모금에 나섰음에도 국민과 시청자의 관심을 별로 이끌어내지 못했다는 점이다.

혹자는 현지시각으로 12일 발생한 아이티의 대지진이, 우리나라 시각으로 그보다 하루 전인 11일 발표된 세종시 수정안보다는 (우리 국민의 입장에서) 덜 충격적인 것이 이유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또 어떤 이는 방송이 세종시 수정안에 대한 본질보다는 아이티 참사에 대한 국민의 온정을 통해 국격(國格)을 높이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식의 물타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이미 국민이 눈치 채고 있음이 본질적 이유라는 제법 그럴 듯한 분석을 하기도 한다.

국격(國格)도 좋고, 국제적 차원의 인도주의의 실천이라는 명분도 그럴 듯하다. G20 정상회의가 우리나라에서 개최되고, 우리도 이제 제법 살게 되었으며, 그동안 다른 나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으니 이제 도움을 줄 수 있는 나라와 백성이 되어 국격을 한층 높이자는 주장 역시 꿈에 부푼 일이다.

광고방송은 몇 초 동안 나올 것이라는 친절한 안내로 본 프로그램이 다시 재개될 때까지 참고 기다릴 수 있게 하는 신뢰는 어쩌면 막연한 국격보다도 국민과 시청자들에게 더 중요할 것이다.

광고방송을 잘 보게 하려면 그 상품의 질이 좋음을 제대로 전달하는 믿음과 함께 흥미를 유발할 수 있도록 잘 만들면 되는 것이 원칙이요 본질이다.

결국 국격을 높이는 일은 국민 스스로가 자부심을 갖도록 해야 하는 일이 첩경으로, 그 긍지와 자부심은 원칙의 준수와 함께 신뢰와 믿음을 주는 정부와 사회, 그리고 높은 도덕성을 바탕으로 생겨난다.

그래도 세종시 수정안이 무조건 좋다는 방송 광고는 계속되고 원안은 표류하는 사이, 사회적 신뢰와 믿음 역시 함께 실종되는 건 아닌지 위험스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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