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다. 전후세대는 영원하다!
아니다. 전후세대는 영원하다!
  • 충청타임즈
  • 승인 2010.01.27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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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한덕현 <본보 편집인>
해가 바뀌어 다시 몸을 추스려볼까를 고민하기도 전에 여론의 된서리를 맞았다. 호프집에 모여서도 그들을 걱정하고, 찜질방의 단연 화제거리도 그들 얘기다. 국내 유수의 언론 역시 벌써 여러 차례 이들의 딱한 처지를 기획화했다.

당사자들은 또 어떤가. 그저 늘 하던 대로 부모님 보살피고 주변 애경사 챙기며 자식들 건사시키느라 눈코 뜰새 바쁠 뿐인데, 느닷없이 이목이 집중되는 게 영 부담스럽기만 하다가도 때가 오긴 왔구나! 하는 절박감에 요즘 밤잠을 설치기 일쑤다.

잘 나가던 대기업 임원의 자살 소식, 그리고 북풍한설 혹한에 서울역을 전전긍긍하는 노숙자들의 사연이 갑자기 가슴에 와 닿는가 싶더니 종종 거울 속으로 바라보이는 본인의 행색이 언제 저렇게 변했나 싶어 한참이나 눈을 떼지 못한다. 전후 세대 이른바 베이비부머들의 얘기다.

이미 인터넷을 달구었듯이 이들은 지금 하루하루가 천근만근의 심정이다. 언젠가는 오늘이 올 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고맙게도 우리 사회 전체가 호들갑을 떨며 걱정해 주고 있으니 한편 고맙기까지 하다.

한국에서의 전후세대는 엄밀히 말해 6·25전쟁이 끝난 후 약 5년 내외로 태어난 사람들이 해당되지만 통상적으론 60년대 초반까지를 꼽는다. 3년여의 전쟁으로 완전히 거덜난 강토에서 태어나 주린배를 움켜쥐며 성장했고, 자라서는 정치 경제 사회 가릴 것없이 격동의 세월을 몸으로 이겨내며 오늘에 이르른 세대다.

지금처럼 계층이나 직업이 다양했던 것도 아니고, 오로지 부모님의 못배운 한만을 되새기면서 악착같이 배워 대기업에 취직하는 것을 최고 목표로 삼았던 그들은 '한강의 기적을 일궈낸 주역'이라는 수식어로 생의 가장 큰 보상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지금, 이들이 거리로 내몰리고 있다. 자료에 따르면 1955년~63년 사이에 태어난 710여만명중 현역 근로자 310여만명이 올해부터 단기간내에 퇴직과 명퇴라는 멍에를 지고 직장에서 쫓겨날 판이다. 이미 사회곳곳에선 이들 세대의 비명소리가 들린 지 오래다.

이들이 그야말로 사회가 공식처럼 요구하는 삶을 살았다면 지금쯤엔 완벽한 노후대책을 세워 놓고 인생의 황금기인 40대 후반과 50대를 맞았어야 정상이다.

하지만, 배울 땐 부모님의 무조건적인 희생이 서러워 한눈 팔지 않고 공부했고 또 사회로 진출해선 그 부모님의 은혜를 갚기 위해 정작 자신에 대해선 제대로 된 성찰 한 번 못하고 젊음을 다 보냈다.

이들이 어려웠던 순간은 이것만이 아니다. 아날로그도 아니고 그렇다고 디지털도 아닌 중간의 '낀 세대'로, 좋게 말하면 과거 전통적 가치관과 현대적 감각의 삶을 모두 누린 복받은 세대라고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 보면 황량하기 그지 없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낀 세대의 가장 큰 고통은 급변하게 변하는 사회적 추세를 따라가는 것이었다. 여기에서 밀리면 낙오자로 찍혔고 설령 그 줄을 잡았다고 하더라도 시대의 주류가 아닌, 주변인으로 만족해야만 하는 숙명 속에서 살았다.

이들에겐 어른과 부모님의 눈치를 보며 간신히 먹을 수 있었던 미국산 분유와 강냉이의 추억이 여전히 아련한데도 지금, 한 손엔 만화책 또 한 손으론 젓가락만 휘젓는 버릇없는 자녀들을 볼 때마다 엄청난 좌절감을 느낀다. 아버지가 수저를 들기 전엔 감히 숨도 못쉬던 본인의 어릴 적을 강요하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밥상머리 교육만큼은 어림없다고 벼르지만, 그때마다 점점 더해지는 자녀들과의 단절은 고통스럽기까지 하다. 그래서 직장에서 밀려나고 배우자와 가족으로부터도 점점 왕따를 당하는 이들 전후 세대들이 기껏 하는 일이란 스스로를 탓하는 것밖에 없다.

하지만 이렇게 주저않을 수만은 없다. 이들에게도 가능성이 있다. 이미 늦은 만큼 더 이상 실패하면 절대로 안 된다는 내공을 갖췄지 않은가.

오기도 있다. 그 어렵던 시절, 이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세상을 개척해 왔고, 그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런 힘이 선진국 문턱에 있는 지금의 대한민국을 가져온 것이다. 이들이 마지막으로 기댈 건 이러한 불같은 의지와 이를 뒷받침하는 건강뿐, 전후세대여 영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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