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도 병인 양 하여
다정도 병인 양 하여
  • 충청타임즈
  • 승인 2010.01.21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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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정규호 <자유기고가>
새해 벽두부터 방송되고 있는 KBS 2TV의 월화 드라마 '공부의 신'이 동 시간대 드라마를 평정하고 선두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만화가 미타 노리후나가 쓴 일본 만화 '드래곤 사쿠라'를 원작으로 하고 있는 '공부의 신'은 드라마의 인기에 힘입어 '최강 입시 전설 꼴찌, 동경대가다'라는 제목으로 탈바꿈한 번역 만화 역시 꾸준한 판매 증가를 보이면서 출판계의 화제가 되고 있다.

KBS와 MBC, SBS 등 공중파 방송3사는 지난해 '선덕여왕'의 독주체제 이후의 시청률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공부의 신' 이외에 '파스타(MBC)', 제중원(SBS) 등의 드라마를 야심차게 선보였다.

그러나 결과는 싱겁게도 방송 3주 만에 '공부의 신'이 25.9%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싱겁게 독주체제를 형성하고 있다.

방송3사의 월화드라마들은 각각 나름대로 확고한 기획의도와 문화적 트렌드에 대한 접근 시도를 통한 가치구현을 겨냥하고 있다.

MBC의 '파스타'의 경우 인간 행복지수 가운데 가장 중요한 한 분야인 음식문화와 이를 둘러싼 요리사들의 분투를 그려내면서 나름대로의 감각을 부추기고 있다.

SBS의 '제중원'은 근대공간을 배경으로 서양의술의 전래 과정을 드라마를 통해 안방극장으로 전이시키면서 역시 건강에 대한 인간의 욕망을 자극하는 문화원형의 콘텐츠화를 추구하고 있다.

반면에 KBS '공부의 신'의 경우는 다분히 현실적인 세계에 대한 접근을 주제로 삼고 있다.

드라마 '공부의 신'의 배경에는 편한 사회생활을 위해서는 성공해야 하고, 그 성공의 가능성은 좋은 대학을 나올 때 높아지는 것이며, 좋은 대학을 가려면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는 등식이 자리하고 있다.

이런 현실적인 등식은 입시를 앞두고 있으며 현재 방학 중인 초·중·고생은 물론 자녀 교육에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는 부모들까지도 TV앞에 모여들게 하는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일본 역시 원제목 그대로인 '드래곤 사쿠라'라는 이름으로 만화가 드라마로 만들어진 이후 동경대 수험생이 12%나 증가했다고 하니, 그 현실은 또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아직 대학입시를 치러야 하는 자녀를 둔 가장 가운데 '공부의 신'이 아닌 다른 드라마를 고수하겠다는 의지(?)를 보인다면, 그것 역시도 '간 큰 남자'로 치부될 수밖에 없는 현실은 또 어떤가. 어디 이뿐인가.

이 엄동설한에 살을 떨며 원안고수를 외치는 지역민들의 절규는 공허한데, 신문과 방송은 아이티 대지진에 대한 극진한 글로벌 휴머니티를 펼치느라 여전히 풍요롭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우리 안의 적'과 '우리 밖의 적'을 구별하지 못한 채 신문과 방송에 몰입돼 사고가 제한되고 생각이 포위되고 있음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다.

드라마 '공부의 신'에 대한 높은 시청률은 공영방송인 KBS가 '공부'라는 숭고한 단어와 그 교육적 가치를 오로지 실력지상주의와 일류대를 중심으로 하는 극단적인 엘리트 의식의 심화를 부추긴다는 사회공동체적 우려는 전혀 배제된 채 '나만 아니면 돼'라는 '1박2일'식의 치기와 다름없다.

법원의 상징인 천칭에는 법관의 이성적 판단과 형평성의 적용이라는 심오한 의미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관심이 모아진 사건에 대한 판결이 자신들의 뜻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삼권분립이고 뭐고 없이 기어이 작살을 내고야 말겠다는 언론의 서슬은 놀랍다.

그런데도 나는 TV의 화려함에 이끌려, 그리고 그 풍부하고 다양한 정성(?)에 현혹되면서 리모콘으로 채널을 점핑하면서 여전히 '다정도 병인 양하여' 잠 못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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