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지신(尾生之信)
미생지신(尾生之信)
  • 충청타임즈
  • 승인 2010.01.20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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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이수한 <청원군노인복지관장 신부>
세종시 수정안이 발표된 이후 수정안 찬반을 놓고 한나라당 정몽준 대표와 박근혜 전 대표 사이에 날선 설전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나온 미생지신(尾生之信)이라는 말의 해석을 두고도 의견이 분분합니다. 찬반 양측이 미생지신이라는 말을 아전인수(我田引水)격으로 해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생지신이란 고사는 사마천의 사기(史記) 소진열전(蘇秦列傳)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춘추시대 노(魯)나라에 미생(尾生)이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어느 날 사랑하는 여인과 다리 아래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하게 됩니다. 그 여인을 기다리는 동안에 큰 홍수가 나지만 미생은 여인과의 약속을 믿고 끝까지 기다립니다. 하지만 끝내 기다리던 여인은 나타나지 않았고 약속만을 믿고 지키려던 미생은 교각을 끌어안고 물에 빠져 죽고 말았다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소진열전에서는 이 미생지신이라는 말이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됩니다. 즉 소진이 자신을 받아주기를 청하며 연나라 소왕을 설득할 때 신의를 강조하기 위해 사용한 말인 것입니다. 하지만 현대에서 미생지신이란 말은 보통 긍정적인 측면보다는 부정적인 의미로 많이 사용됩니다. 즉 융통성이 없이 약속만을 굳게 지킴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사용되고 있는 것입니다.

장자(莊子)의 저서 가운데 하나인 '도척편(盜甁篇)'에는 공자와 춘추전국시대의 전설적인 도둑인 도척의 대화가 나오는데 도척은 미생의 융통성 없고 어리석음을 다음과 같이 통박하고 있습니다. "이런 인간은 제사에 쓰려고 찢어발긴 개나 물에 떠내려가는 돼지, 아니면 쪽박을 들고 빌어먹는 거지와 다를 바 없다."

즉 장자는 도척의 입을 빌려 미생의 어리석고 융통성 없음을 개와 돼지와 거지에 비유하여 평가절하하면서 쓸데없는 명분에 빠져 소중한 목숨을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된다고 비판하고 있는 것입니다.

박근혜 전 대표는 소진의 입장에서 미생을 바라다보고, 정몽준 대표는 도척의 입장에서 미생을 바라다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국토 균형 발전을 위하여 여·야 합의하에 만들어진 세종시법이 정말 쓸데없는 명분이냐 하는 것입니다.

세종시 수정안에 찬성하는 정몽준 대표의 입장에서 미생은 결국 원안을 고수해야 한다,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세종시 수정안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개나 돼지나 거지같은 어리석은 사람들인지도 함께 생각해야만 합니다.

반대로 국토의 균형 발전을 위해서는 반드시 세종시가 원안대로 건설돼야만 하고, 국민들과의 약속 또한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의 미생은 선거 때의 공약을 헌신짝처럼 뒤집어버리는 정치인들이 반드시 본받아야 할 귀감의 대상이라고도 생각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눈앞의 이익에만 관심이 있다면, 그래서 신의를 쉽게 저버린다면 그야말로 금수(禽獸)라 하겠습니다. 정치 역시 사람이 만든 제도라 한다면 눈앞의 이익이 아니라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서 지킬 수 있는 약속만 하고 공약만큼은 반드시 지키는 정치풍토가 자리 잡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정치불신(政治不信)이라는 부끄러운 단어가 이 땅에서 사라지기를 희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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