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교육 비웃는 장학사업
공교육 비웃는 장학사업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0.01.18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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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권혁두 부국장 <영동·보은·옥천>
농촌 지자체나 장학회가 성적이 좋은 학생들만 집중 지원하며 명문대 진학을 뒷바라지하는 사례들이 언론의 조명을 받고 있다. 최근 파격적인 지원시책을 밝혀 주목받는 보은군이 대표적 케이스다.

군비를 출연하고 민간의 기탁을 받아 운영하는 (재)보은군민장학회는 성적이 우수한 중고생에게 기숙사비, 학기별 장학금, 방학중 사설기숙학원 취원료는 물론 서울 유명학원 강사들의 출장강의까지 제공하고 있다. 국내 10위권 대학에 들어가 일정한 학점만 유지하면 졸업때까지 4년간(한 학기당 500만원)등록금도 지원받는다.

올해 지역고교 진학을 결정한 중학교 졸업생 가운데 성적순으로 선발된 10명은 이미 지난달 30일부터 경기도 용인의 한 기숙학원에서 지내고 있다. 5주 일정인 이 프로그램에 소요되는 1인당 220만원의 비용은 장학회가 부담한다.

학기마다 학년별 우수생 10명에게 200만원씩 장학금을 지원하고 1주일에 3번씩 서울 유명학원 강사를 초빙해 특강도 열어준다. 특강에 들어가는 비용만 연 2억2000만원이다. 대학 졸업때까지 장학회가 부여하는 모든 혜택을 누릴 경우 최고 9000만원까지 수혜가 가능하다.

언론의 관심을 끄는 것은 이 시책이 가시적 성과를 거뒀기 때문이다. 지난해는 보은군내 중학 졸업생 상위 20명 가운데 13명이 외지 고교로 진학했으나, 올해는 3명만 빠져나가고 17명이 군내 고교로 진학했다.

그러나 안팎의 갈채를 받는 이 사례 뒤에는 우울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우선 공교육이 노골적으로 사교육에 의존해 학력 증진을 꾀하고 있다는 점이다. 학원강사와 기숙학원에 학생을 맡겨 공교육을 대신하게 하는 것은 사교육에 대해 백기를 든 것이나 마찬가지다. 학교로 학원강사를 불러들이는 것 자체가 공교육 종사자들에게는 수치이다. 공교육에 대한 불신이 더 깊어지고, 학교 교사들의 사기도 떨어트리는 부작용이 걱정된다.

두 번째 문제는 절대다수인 중하위권 학생들이 받게될 박탈감이다. 기금의 절반이 공적자금인 군비로 조성됐음에도 불구하고 장학회의 모든 지원은 10위권 이내 상위권 학생들이 싹쓸이한다. 서울에 올라가 지역을 챙겨줄 인재 육성도 중요하지만, 지역에서 삶을 이어갈 인적자원의 뒷받침도 소중하다. 다문화가정이 늘어나며 그 2세들이 농촌의 주류로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이 점차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그러나 그들 대부분은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마이너'로 밀려나 겉돌고 있다. 열악한 가정형편에 집 안팎에서 겪어야 할 정체성의 혼돈까지 극복하고 그들이 10위권 우수생으로 도약할 가능성은 낮다. 만약 장학회가 엘리트주의로 나가려면 이들도 같은 조건에서 출발선에 설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이 우선이다. 도움이 절실한 미래 보은의 주인들은 음지에 방치하고 소수의 '위너'들만 챙기는 장학사업은 공허하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 사례가 다른 지자체로 확산될 조짐을 보인다는 점이다. 옥천군은 올해 2억1900만원을 들여 2개 인문고교를 대상으로 '명문고 육성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외부강사를 학교로 불러 국영수 심화학습반을 운영한다는 점에서 보은군과 다르지 않다. 지자체마다 학원강사 모시기 경쟁에 나서고 우수 중학졸업생을 잡기 위해 돈을 푸는 행태가 벌어지는 상황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보은군을 벤치마킹하려는 지자체가 있다면 '소탐대실'이 되지 않도록 좀 더 고민할 것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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