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정답 '인간에 대한 예산'
일본의 정답 '인간에 대한 예산'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0.01.07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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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권혁두 부국장 <영동·보은·옥천>
일본은 올 예산에서 사회보장비를 지난해보다 9.8%나 늘어난 27조엔으로 책정했다. 사상 처음으로 사회보장비 비율이 일반세출(53조엔)의 절반을 넘었다고 한다. 이처럼 복지예산을 전례없이 늘린 반면 공공사업비는 무려 18%나 줄였다. 하토야마 수상의 공약인 아동양육을 위한 수당과 고교 무상교육, 농업소득 보전 등에 대한 지원에 주력할 것으로 알려졌다.

예산안 편성을 주도한 오구시 히로시(大串博志, 중의원) 재무성 정무관은 언론과 인터뷰에서 "'물질에 대한 예산'에서 '인간에 대한 예산'으로 방향을 바꿨다"고 말했다.

미 오바마 정권은 올해 건강보험 개혁에 사활을 걸 전망이다. 이 개혁법안은 고급 사보험에 가입해 고품질 의료서비스를 독점해온 고소득층과 절름발이 정책을 통해 특혜를 누려온 의료·보험·제약업계 등의 반발을 극복하고 지난해 성탄절 이브 상원을 통과했다. 문제는 돈이다. 4700만명에 달하는 보험 무가입자들을 공공보험 도입으로 커버하려면 향후 10년간 1조달러 이상을 쏟아부어야 한다.

오바마와 민주당은 연수입 25만달러 이상 고소득층에 부과되는 세금에 누진제를 적용해 예산을 확보할 계획이다. 부자의 지갑을 벌려 빈자를 구제하려는 이 발상을 공화당은 사회주의 정책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오바마가 보수의 두꺼운 장벽을 뚫고 '부자증세'를 어떻게 이뤄낼지가 국제적 관심사가 되고 있다.

미국과 일본은 글로벌 경제위기와 세수 감소로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이너리티'를 위한 복지 확충에 주력하고 있다. 중산층 이하 서민들이 경제난으로 받을 타격이 상대적으로 더 크기 때문이다. '부자감세'로 정권 출발의 신호탄을 쏘았던 우리는 여전히 선진국과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다. 복지는 축소되고 4대강 정비를 비롯한 공공사업은 확대되는 양상이다.

올해 복지예산이 명목상 늘었다고는 하지만 실질 내용과 향후 전망은 어둡다. 소외계층에 직접 지원될 적지않은 예산이 삭감됐고, 보육·여성·노인·청소년 등 취약계층 지원 예산의 증가율도 앞으로 크게 떨어질 전망이다. 보육·여성·가족 부문 예산의 경우 지난 2005년부터 지난해 사이 연 7000억원에서 1조6000억원으로 연평균 42% 증가했다. 하지만 정부는 내년부터 2012년까지 연평균 9.5%로 증가세를 크게 낮출 계획이다. 노인·청소년·취약계층 지원 예산도 2005~2008년 사이 연평균 31% 늘었으나, 앞으로 4년 동안은 연평균 14.1% 증가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복지의 후퇴를 가져올 주범이 4대강 사업만은 아닌 것 같다. 원안이 폐기돼 기업도시로 변질 중인 세종시 역시 국가재정을 잡아먹는 하마가 돼 복지를 위축시킬 공범이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헐값의 부지와 파격적인 세제 혜택은 정부의 재정 부담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경기도를 비롯해 특화도시를 추진 중인 각 지자체들이 역차별을 호소하고 있어 세종시로 국한해야 할 특혜들이 다른 시도로 확대될 공산도 높다. 기업에 대한 광범위한 특전이 정부의 재정 악화를 초래하고, 부담은 국민들이 지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적지않다. 서민들은 새해 벽두부터 날아든 공공요금을 비롯한 각종 물가, 방송수신료 등의 인상 소식에 걱정이 태산이다. 성장을 보류하고 '인간을 위한' 예산을 운용하기로 했다는 이웃나라의 따뜻한 정치가 부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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