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수 많은 예술가들을 익사시킨 술
그때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수 많은 예술가들을 익사시킨 술
  • 충청타임즈
  • 승인 2010.01.07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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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영의 에세이
김우영 <소설가>
술은 생명의 물이자 악마의 피라는 찬사와 저주를 한 몸에 받고 있다. 이처럼 야누스적인 극단적 양면성을 지닌 술은 인간의 끈끈한 삶과 더불어 영원불멸의 뿌리를 내리고 지속되어 왔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수많은 명사들은 술을 지극히도 사랑했다. 어떤 이는 자신의 예술 세계에 술을 용해하여 창작의 샘으로 승화시켜 성공하기도 했고,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을 넘지 못해 폭음으로 달래다가 자신의 예술혼과 생명을 단축시킨 사람도 많았다.

동양권에서는 중국의 이태백이 있다면 우리나라의 김삿갓이 있고, 일본의 바쇼가 있으며, 서양권에서는 그리스의 소크라테스, 미국의 헤밍웨이, 러시아의 톨스토이 등은 당대에서는 내로라하는 석학이요, 주당들이었다.

세계적인 대주호로 일컬어지는 서양철학의 시조이자 그리스의 철학자인 소크라테스는 작가 이가톤과 아리스토파네스 등과 어울려 술을 즐기며 학문과 사상의 차원을 높여 나갔으나 결국 사형을 언도 받고 독배를 들었다.

정치와 예술의 꽃을 피웠던 철옹성 로마를 술에 취한 채 불살라 버린 폭군 네로 황제가 있다. 저 빙하의 설원에서 손을 호호 불며 보드카를 즐겨 마셨던 러시아의 극작가 톨스토이, 밤 10시부터 새벽까지 글을 쓰고는 오전 내내 술을 마시며 지냈던 미국의 작가 헤밍웨이, 당대 최고의 폭음가로 '위대한 개츠비'를 쓴 작가 피츠제럴드 외에 시저, 괴테, 세네카토, 알프레드텔러, 헨델 등 수많은 정치가와 예술가들이 술을 사랑하다 요절하거나 자살, 지병 등으로 죽어갔다.

동양권에서는 중국의 이백을 단연코 첫 손가락에 꼽는다. 하늘에서 귀양살이 왔다는 주신 이태백, 그와 함께 쌍벽을 이루었던 시성(詩聖)이자 주당인 두보, 도연명, 백낙천, 소동파가 있고, 우리나라의 방랑시인 김삿갓도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한국의 근대사에서도 이런 인물들은 얼마든지 있다. 대낮에 술에 취해서 벌거벗은 채 황소를 타고 서울 명륜동 거리에 나타난 공초(꽁초) 오상순을 비롯하여 술의 명인으로 불리는 '명정 40년'의 수주 변영로, 일찍이 10세부터 술을 도통했던 무애 양주동, 주도유단(主道有段)을 18단계로 설정하여 분류한 조지훈 시인, 술 주전자를 천장에 매달아 놓고 필요할 때마다 당기어 마셨던 폭음가인 김관식 시인, 술에 취해 길을 걷다가 교통사고로 비명에 간 김수영 시인, 고문 후유증으로 스스로 무너져 간 박정만 시인의 연거푸 술, 처마 밑 호롱불에 눈이 시리다며 술만 마시면 꺼어억 꺼어억 울던 박용래 시인, 술만 마시면 동료와 후배들을 줄줄이 달고 유성 둑길을 내내 오가다 유명을 달리한 한성기 시인, 예술인들의 주중풍경을 쓰겠다고 술깨나 마시던 '관철동 시대'의 작가 강홍규씨, 이 세상의 천상 시인 천상병 , 맛깔기행 작가 홍성유 등은 거리낌 없이 이 시대를 휘젓고 다니다 술에 절고, 가난에 끓고, 세상이 버거워서 휘청거리다 못해 유명을 달리한 우리나라 근대 예술의 주역들이다.

'술의 신 바커스(Bacchus)는 바다의 신 넵튠(Neptune)보다 더 많은 사람을 익사시켰다!'라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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