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만큼은 제대로 감시하자
예산만큼은 제대로 감시하자
  • 권혁두 기자
  • 승인 2009.12.28 22: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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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권혁두 부국장 <영동·보은·옥천>
대중 목욕탕에 가면 들어와서 나갈 때까지 계속 물을 틀어놓은 채 목욕하는 사람들이 있다. 때를 밀거나 비누칠 하는 경우는 물론이고 심지어는 물을 틀어둔 채 사우나실에 들어가는 사람도 있다. 하릴없이 수채구멍으로 빠져나가는 물에 신경이 쓰여 옆 자리 소심한 사람은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지만, 참견해봤자 돌아올 대답은 뻔하다. "내돈 내고 내가 물 쓰는 데 웬 간섭이요".

이 사람은 음식점에서 남과 같은 돈 내고 자신만 곱배기를 먹은 흡족한 기분으로 목욕탕을 나설지도 모른다, 그러나 계산착오다. 물이 바닥나 줄서서 생활용수를 배급받게 될 후세들의 미래는 차치하자. 현재 수돗물값은 생산원가에 크게 미달한다. 지자체는 적자를 감수하며 주민들에게 물을 공급한다. 사용량이 늘어날수록 지자체의 상수도회계 적자가 커진다는 얘기다. 이 사람이 목욕탕에서 흘려버리는 물은 상수도 재정을 압박하는 요인이 되고, 결국 수도료 인상으로 이어진다.

본인뿐 아니라 이웃에까지 공동의 불이익을 초래하는 무지하고 몰염치한 행태가 바로 목욕탕에서 물을 허비하는 짓이다. 다행인 것은 이 사람이 절대로 자기 집에서는 이렇게 물을 물쓰듯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른 사람이 자기 집에 와서 수돗물을 틀어놓고 다른 볼일을 보면 얼른 가서 잠글 사람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체로 우리는 직접적인 손실이 예견되는 상황에서는 적극적이지만, 간접적이거나 남과 분담할 피해에 대해서는 소극적이다.

주민들이 지자체 예산을 보는 시각이 비슷하다. 예산낭비 사례를 보도하다 관련 기관과 관계가 불편해지기라도 하면 주변에서 조언이랍시고 해주는 말이 있다. "당신 돈도 아니면서 그렇게 꼬치 꼬치 따질 것 무엇이냐"는 것이다. 내 돈이고 당신 돈이기 때문이라고 반박해 보지만, 그래도 이해할 수 없다는 천진한 표정 앞에서는 맥이 빠진다.

경기도 성남시가 3200억원을 들여 초호화 청사를 짓고나서 내년도 재정 운용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고 한다. 내년도 예산이 올해 추경보다 20% 이상이나 줄어든다는 것이다. 보육시설과 주차장 건립, 어린이공원 정비 등 각종 공공사업 예산이 줄줄이 삭감될 것이라고 한다.

경기지사실보다도 넓은 시장실만 봐도 성남시청의 규모가 짐작된다. 면적이 282㎡(85평)로 서민 아파트 3채 규모다. 사무실을 오가기도 벅찰 판이다. 새 청사가 도마에 올라 범국민적인 몰매를 맞았는데도 성남시는 2억여원이나 들여 인기가수들을 초청하고 호화판 개청식을 강행했다.

문제는 성남시의 궤도를 벗어난 무한질주가 아무런 견제없이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시장과 소속정당이 같은 한나라당 의원들이 주도하는 시의회의 방조는 그렇다고 쳐도 일반 시민들의 침묵은 의문이다.

그나마 성남시는 지립도가 높은 수도권 지자체다. 단체장이 한 번 실패를 해도 만회할 자생력을 갖추고 있다. 기댈 언덕조차 없이 중앙정부만 쳐다보는 농촌 지자체들이 이런 사태를 당하면 처방이 없다. 다른 것은 단체장의 재량이나 특권으로 양보하더라도 예산에 대해서만큼은 주민들이 적극적인 감시에 나서야 하는 이유다. 목욕탕의 물처럼 누군가 낭비하면 전체가 피해와 부담을 나눠서 져야하기 때문이다.

시장 집무실을 맨 꼭대기인 9층 한 복판에 설치한 성남시청을 시민들은 '아방궁'이라고 부른다. '진시황'의 부활은 이번 한 번으로 끝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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