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배꼽이 또르르 구르면
이 배꼽이 또르르 구르면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12.10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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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영의 에세이
김우영 <소설가>
오늘날 문단에서 적어도 막걸리하면 금방 떠오르는 시인이 바로 천상의 시인인 천상병 시인이다. 십년이 넘도록 막걸리를 주식으로 하고, 밥 한 숟갈이나 우유 한 모금을 부식으로 하여 살아오신 분이니까.

생전에 의정부 수락산 밑에 계시는 그분을 가끔 찾아뵈면 언제나 낙낙할 만큼 취해서 동네 꼬마들하고 놀고 계신다. '요놈! 요놈! 요 이쁜 놈!' 하면서 말이다. 그분의 막걸리 정량은 하루에 두 병이었는데 서울 막걸리와는 달리 병이 큰 의정부 막걸리였다. 그 두 병을 방에 놓아두고는 생각날 때마다 한 잔씩 따라 마시므로 아주 대취하지 않고 하루 종일 그저 적당히 취기에 젖어있는 것이다. 그러나 말년에는 맥주로 주종을 개종하여 마셨었다.

비록, 하루에 마시는 양이 많지는 않다고 하지만 평생을 술과 더불어 살아왔으니 간인들 온전했을 리 있었겠는가. 회갑을 몇 년 앞두고 간경화증으로 자리에 눕고 말았다. 간경화증이라면 기본적인 체력을 갖추고 있는 사람이라도 정상회복이 힘들다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이다. 그런데도 그분은 그 어려운 질환에서도 말끔히 벗어났으니 역시 하늘이 낸 천상, 천하의 시인이라고 할 밖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겠다.

그러니까 60년대 어느 해 그가 실종되었을 때 민영 시인을 비롯한 동료 문인들이 그의 죽음을 기정사실화하고 엮어 낸 시집 '새'는 엄연히 살아있는 사람의 유고 시집 제1호로도 유명하다.

당시에 그는 행려병자로 취급되어 시립병원에 수용되어 있다가 회복된 후 가가대소呵呵大笑하며 다시 세상에 나타났던 것이다. 그 때문에도 문단의 일각에서는 그의 생명은 하늘이 주관하고 있기 때문에 어설픈 인간의 자로 계측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 공공연히 떠돌 정도였다.

그런데 이번에도 그 말을 입증이라도 하듯 간경화증이라는 불치병을 거뜬히 극복했으니 참으로 경이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피골이 상접한 몸에 남산만큼 부풀어 오른 배, 병은 이미 그 지경으로 깊었으니 그에게서 온전히 회복되리라고 기대한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그를 딱하게 여긴 의사 친구 한 분이 자기의 병원에 입원을 시켰다. 춘천에 있는 내과병원이었는데, 어느 날 부인 목순옥 여사가 문병을 갔을 때의 일이라고 한다. 병실 문을 열자마자 그분은 그 특유의 천진스러운 웃음을 깔까르르, 깔까르르 웃더라는 것이다. 영문을 몰라 서 있는 목 여사에게 말했다.

"야, 이 문디가시나야. 빨리 와 본나!"하며 부르더니 했다는 말이 걸작이다. 친구 의사에게 술을 딱 한 잔만 마시게 해달라고 졸랐단다. 그 의사가 점잖게 나무란 뒤에 똑 튀어 나온 배꼽을 가리키며, "조금만 참으면 이 배꼽이 똑 떨어져서 침대 밑으로 또르르 구를 것이다. 그럼 병이 다 나은 것이니 그때 한 잔 마셔도 좋다"고 했다면서 그렇게 재미있어 하더라는 것이다

"뭐 배꼽이 떨어져 또르르 구르면? 뭐 이 배꼽이 떨어져 또르르 구르면?"하고 연방 웃어대면서 말이다. 아무튼 배꼽이 떨어져 구르지는 않았겠지만 기적적으로 병은 나았다. 얼마 전 대전에서 행사가 있을 때 목 여사를 만나 반갑게 두 손을 잡으니 눈가 주름이 세월처럼 묻어나고 있었다. 인생은 짧고 술잔은 긴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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