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두차안(回頭此岸)
회두차안(回頭此岸)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11.30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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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자의 목소리
법안 <논산 안심정사 주지스님>
국제 불교 문화교류를 위하여 타이완이나 일본, 중국 등을 방문했던 적이 있었다. 그 가운데 타이완의 타이베이 근교의 석지라는 곳에 가면 자항당이라는 아담하면서 유명한 절이 있다. 그 절에는 자항법사의 육신이 사후에 썩지 않아서 육신보살로 모셔놓은 절이다.

그 아래에는 정수선원이란 큰 절이 있는데 그 절의 일주문에는 회두차안이라는 큼지막한 글이 쓰여 있다. '회두차안(머리를 차안·우리가 사는 고통이 넘쳐나는 세계를 차안이라고 하기도 하고 사바세계라고 함)'으로 머리를 돌리라고 한 것이다.

모두가 천상의 즐거움을 말하고, 극락을 사모할 때에도 우리는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도(道)에 이르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고 늘 깨어 있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진리든 도이든 그 무엇이든 우리가 사는 세상을 떠나서 별개로 존재하는 딴 세상이 아니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인도에 가면 고행하는 수행자들이 많다. 이생에서 고행(苦行)을 많이 할수록 천상락과 후생락을 누린다는 사고방식이고, 인간은 원죄적 존재이기 때문에 고행을 통해서만 정화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이다.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실생활 따로 있고, 후생락이 따로 있다는 것을 불교에서는 철저히 부정한다.

앉은 자리가 천상락이 되게 하고, 자리마다 극락이 되게 하라는 것이 불교의 가르침이다. 쉽지는 않겠지만 그것을 떠난다면 그것은 마약과 같은 존재이고, 인간에게 건전한 의지적 사고방식과 윤리 도덕적 사고방식을 마비시킬 우려가 아주 많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허약한 범부중생들은 현실 도피적 방법으로 신앙을 선택할 우려가 많기 때문이다.

결국 모든 존재는 자신의 업력(業力·자신이 알게 모르게 지은 행위의 힘)에 의해 자신의 세상을 만들어간다는 것이 또한 진리이다.

그러나 모든 단계에서 공부해 가는 존재가 또한 범부중생이기 때문에 회두차안이란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에게 가장 필요한 맘 씀이기도 하다. 나 혼자가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는 모습이 바로 회두차안이다. 어두운 곳에 한 번쯤이 아니라 자주자주 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

비록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는 풀잎처럼, 호수의 물처럼 보잘 것 없어 보이는 것이 우리 인간이지만 한편으로는 인류의 역사를 발전시켜 온 것을 보면 대단하지 아니한가 나도 좋게 살고 남도 좋게 살도록 도와주는 것이 바로 회두차안의 진정한 정신은 아닐까

오늘날 우리 사회는 절대적 경제 상황으로는 더없이 좋아졌다. 우리 부모들은 하루 16시간 중노동을 하시고도 일주일간 둘이 벌어도 쌀 한 말을 살 수 없었다. 절대 빈곤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이다. 오늘날은 절대빈곤 국가는 아니다. 문제는 상대적 빈곤감이라는 심리적 빈곤에 의하여 각계각층이 대립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남 잘되는 것은 배아픈 것이 문제이다.

세종시 문제가 시끄럽다. 당리당략이 아니라, 충청도민과 주민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주는 정치인이 그립다. 사리사욕에 눈멀어 역사 앞에서 떳떳하지 못하게 선동정치를 획책하는 정치인들이 불쌍하다.

진정으로 내가 누리는 즐거움을 남도 같이 나눌 수 있는 그런 지도자들이 그리운 아침이다. 회두차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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