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것의 소중함을 되살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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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10.21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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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으로 읽는 세상이야기
김귀룡 <충북대학교 인문대학 철학과 교수>
우리나라 사람들은 물론이고 전 세계의 학자들이 세종대왕이 창제한 훈민정음을 뛰어난 문자 체계이자 음성의 체계라고 평가하고 있다.

훈민정음은 자음과 모음을 다 갖추고 있다.

자음과 모음을 다 갖추고 있다는 걸 새삼스럽게 언급할 필요가 있느냐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모르는 소리다. 문자의 역사를 살펴보면 페니키아 문자나 이집트의 상형문자, 히브리 문자 등에는 자음만이 있고 모음이 없다.

인류 역사상 최초로 자음과 모음을 함께 갖추고 있는 문자는 그리스 문자이다. 그리스 문자가 최초로 사용되던 시기의 그리스 문명은 이집트나 바빌로니아 문명에 비해 후진 문명이었다.

문자 사용의 역사에서도 그리스는 한참을 뒤져 있었다. 자음과 모음을 함께 갖추고 있는 알파벳 문자를 사용한지 300~400년이 지난 후 그리스 문명이 이집트 문명이나 바빌론 문명을 앞섰다.

후진문명이었던 그리스가 선진문명을 압도할 수 있었던 것은 자모음을 아울러 갖춘 그리스 알파벳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훈민정음이 자모음을 함께 갖춘 문자체계라는 점은 우리 문화 수준을 한 단계 높일 수 있는 조건이 구비되었다는 걸 의미한다.

훈민정음은 서구의 알파벳과 달리 발성기관에서 소리 나는 곳의 모양을 본떠서 만들어졌다.

곧 문자의 모양에 생체의 질서가 반영돼 있다.

이런 점에서 훈민정음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서구인들과 달리 인간의 생체 질서와 근접한 사유방식을 습득할 수 있게 된다.

곧 인간의 몸과 유리된 추상적인 사유를 습득하기보다 인간 몸의 질서를 토대로 하는 구체적인 사유습관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철학적으로 생각해보면 현실과 유리된 이론 체계를 토대로 형성된 서구 문명의 각종 폐해를 극복해낼 수 있는 잠재력이 훈민정음 안에 갖춰져 있다는 말이 된다.

국제음성학회는 세계 문자의 음가를 나타내기 위해 발음기호를 고안해서 사용하고 있다.

이는 각국의 문자와 발성체계가 다르기 때문에 짜낸 고육지책(苦肉之策)이라고 할 수 있다.

세종대왕은 문자와 음가를 일치시킬 수 있는 방식으로 훈민정음을 창제한다.

그에 따라서 훈민정음 자체가 서구의 발음기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훈민정음이 인간이 낼 수 있는 모든 발성음에 대한 준거나 기준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훈민정음의 자모음 체계는 인간 발성구조로 낼 수 있는 모든 음을 포괄할 수 있는 방식으로 조직되어 있다.

곧 인간이 낼 수 있는 모든 소리를 남김없이 표현해낼 수 있는 표음문자체계이다.

이 같은 체계는 근대 철학의 아버지인 데카르트가 고안해낸 수리 체계보다 훨씬 더 이로정연하고 포괄적인 체계라고 할 수 있다.

훈민정음은 캐면 캘수록 가치가 높아지는 문화의 보물창고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가 지금 사용하고 있는 한글의 체제는 훈민정음에 비해 많은 부분에서 미흡하다. 문자와 음가가 많이 소실되어서 기존의 유연한 조직성이나 포괄성을 살리지 못하고 있다.

서구 음성학이나 문법학에 맞추다 보니 이런 결과가 초래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자신의 것을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은 미덕이라고 말할 수 있다.

겸허하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신의 것을 모두 별 볼일 없다고 생각하는 건 미덕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자기 비하는 미덕이라기보다는 자학이기 때문이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를 갖고 있는 우리의 문화유산에 대한 재발굴과 재평가가 있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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