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의 진보에게 묻는다
이 땅의 진보에게 묻는다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08.31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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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김상해 충청대학 행정학부교수

무릇 진보주의는 경쟁을 토대로 하는 민주주의나 시장경제의 부작용을 보완하여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려는 이념적 성향이다. 민주사회는 어느 상황에서든 경쟁을 통해 선(진리, 정의)을 찾고 그 결과에 따라 가치(부, 명예, 권력 등)를 배분한다. 그래서 인간존엄을 바탕으로 한 자유와 개인주의가 소중한 사회적 가치가 되고, 대부분 결과가 불평등해지는 것을 적극 옹호한다. 즉 결과가 평등해지는 것은 각 개인이 갖고 있는 능력과 각 직업이 가지고 있는 가치를 무시하여 결과적으로 엄청난 사회적 비효율을 초래할 것이라고 본다.

그러면 진보주의는 무엇인가. 다양하고 치열한 경쟁, 이것은 수많은 낙오자를 만든다. 근본적으로 경쟁의 출발선상에 선 다양한 경쟁자들 중 빈곤층, 노동자, 여성, 장애인, 노인 등 사회적 약자들은 실패를 거듭한다. 가난과 무지가 대물림된다. 이때 게임규칙이 아무리 공정하다 하더라도 그들에게는 절망과 오명만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제기한 것이 유럽의 사회민주주의이며, 미국 민주당의 핵심적 가치이다. 60년대 J. Rawls의 최소 수혜자들을 위한 우선배려와 공동체적 가치(인권, 교육, 생태, 환경, 노동)를 매우 중시한다. '힘이 곧 선'인 사회정의가 '약자 우선'의 분배적 정의로 전환되던 시점이다.

우리는 지난 10년 진보정권을 경험했다. 50년 넘는 보수정권의 무차별적 권력남용과 오용으로 빚어낸 국가부도위기의 덕이었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호흡할 수 있었다. 우리는 사회정의가 왜 중요하며 어떻게 실천되어야 하는지 목격할 수 있었다. 이 땅에도 인권과 분권이 제도적으로 정착되는 엄청난 역사적 진보를 이루어 냈다.

하지만 민주개혁세력은 사사건건 분열했고, 서로 총부리를 겨누었다. 비정규직법, 한미 FTA협정, 이라크 파병 등 진보세력의 대변자가 아닌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고독하고 힘든 결단을 할 수밖에 없었던 그때, 열린우리당은 사분오열되었고, 민노당의 공격은 차마 목줄을 죄는 듯했다. 그 매는 더욱 혹독했다. 배신자 노무현!

그래서 우리는 현재 과거에 살게 됐다. 조선왕조를 새로 복원할 수도 있는 권력이 보수세력에게 갔다. 동시에 그들은 그간 숨죽이며 기회를 엿보던 권력기관을 접수하였다. 동시에 과거 10년을 무력화시키며, 역사를 30년전으로 회귀시키고 있다. 야만에 가까운 탄압과 보복, 그리고 굴종을 강요하고 있다. 언론장악과 함께 개헌을 통한 장기 보수정권도 구상하는 듯하다.

반면 진보진영은 어떠한가. 완전히 초토화되고 민심은 떠났다. 한국 민주주의를 온몸으로 지켜냈던 두 거목도 쓰러졌다. 그들은 다시 한 번 몸을 던져 죽어가는 한국의 진보를 구해내고자 했다. 그리고 이어진 거대한 슬픔과 애도의 물결, 그러나 흐느끼는 민심은 갈 곳이 없다. 그것이 우리의 불행이고 절망스러운 현실이다.

나는 안다. 진보도 수많은 스펙트럼이 있고, 강조점이 있다는 것을. 그러나 그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우리는 '영원히 농락당하는 사회'로 가게 될 것이다. 지금은 무조건적 연대가 필요한 때다. 또한 양심적이고 용기있는 진보세력의 영입에도 박차를 가해야 한다. 희망을 주는 정치가 바로 진보이기 때문이다. 쇠털 같은 기득권의 덫에 빠져 당권당리에 연연한다면 그것은 역사적 죄인이 되는 지름길. 혼맥으로, 돈으로, 권력으로 얽히고 설킨 한국사회의 거대 철옹성, 사즉생 외에 또 무엇이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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